미국에서 매년 2월 셋째 월요일은 ‘대통령의 날’로 기념된다. 연방공휴일이니 미 전국의 50개 주에서 기념하려니 생각하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주정부의 재량에 따라 이 날을 기념하는 주도 있고, 없는 듯이 지나가는 주도 있다.
‘대통령의 날’의 유래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생일 축하행사였다. 그래서 이 날의 법적 공식명칭은 ‘워싱턴 생일날’이다. 신생 미국이 탄생했을 때, 국민들이 워싱턴에 대해 갖는 존경심은 하늘을 찔렀다. 막강한 대영제국을 상대로 독립을 쟁취한 공도 공이려니와 당시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나 대통령은 낯설었다. 군주제와 왕에 익숙하던 시대였다. 워싱턴이 대통령이라고는 하지만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 그는 군왕이었다. 왕의 생일을 온 국민이 경축하는 것은 자연스런 의례. 워싱턴의 생일은 비공식적 경축일로 오래 이어져왔다.
그렇다고 워싱턴이 왕처럼 추앙 받기를 즐기던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과도한 존경이나 찬양을 못 참아한 것으로 전해진다. 생일을 챙기는 타입도 아니었다. 28살이 된 1760년 생일날 일기를 보면 그는 하루 종일 과수원 담장 만드느라 바빴던 이야기만 적어놓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생일축하 행사를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정치적 결정이었다. 1778년 대륙군 총사령관으로서 펜실베이니어, 밸리 포지에 주둔하고 있을 때였다. 일단의 고수들과 파이프 연주대가 워싱턴의 숙소 앞에서 생일축하 연주를 한 것이 시작이었다. 전쟁 중 생일 축하행사라? 그것은 적군, 특히 영국군왕 조지 3세에게 묘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데 그는 착안했다. 자신들의 여유 만만함 그리고 상대에 대한 코웃음 같은 것이었다.
건국 후 워싱턴은 생일날 무도회 불꽃놀이 등 축하행사를 정례화 했다. 역사도 전통도 일천한 새 나라가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면 다함께 축하할 뭔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워싱턴은 알고 있었다. 아울러 자신이 통합의 중심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워싱턴 생일날 국민들은 다 함께 축하하며 하나로 뭉치는 경험을 했다.
워싱턴이 1799년 사망하면서 그의 생일은 비공식적 기념일이 되었고, 1879년부터 2월 22일 그의 생일이 연방 공휴일로 정해졌다. 그리고는 1968년, 연방의회가 월요일 일괄 공휴일 법을 통과시키면서(메모리얼 데이는 5월 마지막 월요일, 노동절은 9월 첫 월요일 등) 날짜대신 세 번째 월요일이 ‘대통령의 날’이 되었다. 아울러 워싱턴뿐 아니라 링컨, 혹은 모든 대통령을 기념하는 날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주에 따라 이 날이 대통령들의 날(Presidents’ Day), 대통령의 날(President’s Day) 등 표기가 다른 배경이다.
워싱턴이 단합을 위해 시작한 것이 ‘대통령의 날’이 되었다면 2025년의 이 날은 어떤가. 통합과는 거리가 먼 대통령이 재집권한 지 거의 한 달. 이 날을 기념이나 경축이 아니라 ‘행동의 날’로 삼자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내 대통령 아닌 대통령의 날(Not My President’s Day)’을 슬로건으로 한 트럼프 반대 운동이다.
주최는 50501 운동. ‘50개 시위, 50개 주, 1일’을 줄인 말로 정해진 하루 동안 50개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를 벌이자는 풀뿌리운동이다. 2월 초순 결성된 이 운동의 목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과 행동들에 의연히 맞섬으로써 파시즘을 막고 정부의 책무를 촉구하는 것. 레딧에서 처음 아이디어가 나온 후 입에서 입으로, 소셜미디어들을 통해 퍼져 나가더니 어느새 전국단위 민중운동이 되었다.
그들은 말한다. “나라의 근본 원칙들이 도전받고 있다” “민주주의의 토대가 위태롭다”… 소셜미디어 속 아우성이 행동이 되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흔치 않은, 이상한 대통령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