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광화문 앞을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간다. 중국인 부부 관광객이 한복을 떨쳐입고 광화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며 좋아라 웃는다. 광화문이 문화광(問化光)으로 된 중국 한자 현판을 보고 이들은 얼마나 흐뭇할까.
그래 한국은 우리의 속국이었지 하는 듯한 그들을 보고 도대체 훈민정음을 창제한 경복궁의 남문인 이곳이 왜 아직까지 한자 현판을 고수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 광장은 세종대왕이 나신 곳이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출구에서 지척인데다가 커다란 세종대왕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한글창제 원리인 천지인을 바탕으로 한 한글 자음과 모음의 형태를 연출한 놀이형 글자 분수, 세종로공원에는 재외동포를 포함한 국민 1,172명이 직접 쓴 한글을 새긴 돌, 그 돌들 뒤에는 2014년 8월 제막한 ‘조선어학회 한말글수호 기념탑’ 이 우뚝 솟아있다.
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한글수호를 한 조선어학회의 노력을 기억코자 세워진 10미터 높이의 청동으로 된 이 탑앞 동판에는 최현배, 이희승, 이극로 등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한글을 지켜온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우리 민족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그 탑 앞을 영문으로 된 ‘세종로 공원 푸드 존’이 가로막고 있다. 푸드 존에서는 어린이 입맛에 맞는 콜라와 피자, 햄버거 등을 팔고있다. 세종문화회관 뒤와 교보문고 뒤로 수많은 음식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히 서양음식 먹자골목이 되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뿐인가,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한글회관까지 이어지는 샛길과 한글학회부터 경복궁 역으로 이어지는 길의 두 갈래 길은 ‘한글 가온길’로 지정되어 길 벽면에 한글창제부터 수호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조형물과 정보들이 새겨져 있다.
이 지역이 모두 K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린 우리 문자 한글이 근간인데 왜 굳이 광화문 현판만 한자일까? 광화문은 1395년(태조 4년) 9월에 창간됐고 1425년(세종 7년)에 집현전 학사들이 광화문이라 지었다. 임진왜란때 경복궁이 불타면서 광화문 현판도 타버려 누가 썼는 지 알 수 없었다.
현재 광화문에 걸린 한자 현판은 1865년 (고종 2년) 광화문을 중건하면서 당시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것을 복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이 현판이 소실됐고 1968년 광화문을 복원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로 쓴 현판이 걸렸었다.
그후 독재자의 필적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하면서 궁지에 몰린 문화재청(현재 국가유산청)이 2010년 8월 임태영의 글씨를 복원한 ‘문화광(問化光)’을 내걸었다. 그런데 3개월만에 현판이 갈라지면서 다시 제작에 들어갔다. 2016년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소장 1893년 현판의 바탕색이 글자보다 훨씬 진한 사진과 자료 분석결과 원래 현판이 검은 바탕에 금색글씨였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었다.
2019년 경복궁 중건 다시 훈련대장 임태영의 글씨를 검은 바탕에 황금빛 동판 글씨를 새기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래서 지금 걸린 한자 현판은 첨단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현판 글씨의 복원을 한 것이다. 우여곡절이 많은 광화문 현판이지만 잘못되었다면 다시 바꾸어야 한다.
작년 10월말 연세대에서 열린 국제PEN한국본부 주최 ‘제10회 한글작가대회’에서 300여명의 작가들이 ‘광화문 한자 현판을 한글 현판으로 교체하라!’ 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12월28일 광화문 북광장에서 열린 한국창제 581돌기념 광화문한글현판세계시민대회에서도 같은 주장을 했었다.
그런데 문화유산청은 ‘문화재 복원은 역사성이 중요하다. 당시 한자문화권이었기에 현판 또한 복원 기준에 따라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한자 현판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1995년 경복궁 복원사업이 진행되면서 중앙청을 왜 부쉈는가? 일제강점기 역사인 조선총독부 청사라고 보존해야 하지 않는가.
광화문 광장은 한국의 얼굴이자 중심이다. K한류를 찾아 서울로 오는 외국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있는 이곳에 중국에의 사대주의를 강하게 보여주는 구 시대의 유물 한자현판이 걸려있다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을 뭉개는 일이다. 빠른 시간내에 한자 현판을 한글 현판으로 교체하여 우리의 자존감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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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