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 조선’은 2010년대 초반, 아무리 노력해도 살기 어려운 한국사회를 풍자하며 만들어진 신조어다. 헬(Hell)과 조선(朝鮮)의 합성어로 ‘지옥과 같은 한국(조선)’이라는 뜻으로 2014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유행을 했다가 2017년부터 수그러졌었다.
2015년 출간된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시선을 끌었고 9년 후인 2024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영화 ‘한국이 싫어서’ 가 선정되었다. 주인공 계나(고아성 분)는 이민 가는 이유가 ‘한국이 싫어서, 여기서는 못살겠어서’ 였다.
계나를 떠나게 한 이 ‘헬 조선’이 2024년부터 부상하더니 2025년 들어 자주 사용되고 있다. 시대를 떠나서 취업, 폭등한 물가, 주택문제, 비정규직 문제는 늘 있었다. 여기에 저출산으로 대한민국이 망할 것이라는 불안한 미래, 탄핵 정국으로 깊어진 세대 갈등, 2030세대의 상대적 박탈감 등이 더해진 것이다.
한국에 나와보니 혼기 놓친 젊은이들이 수두룩했다. 30대 후반과 40대 초의 아들 둘이 아직 미혼, 40대 딸은 전문직이나 비혼주의자, 직장 다니며 착실히 결혼자금 모았으나 인연을 못만난 30대 후반 딸 등이 주위에 있었다.
아이때부터 영어유치원에 의대준비반까지, 중고등학생때는 과학고반, 서울명문대 준비반 등 학원비가 엄청나다. 아이 안 낳고 세계여행 다니거나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우는 젊은이들도 많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시대에서 인간관계, 집 사는 것을 포기한 5포 시대란 말이 옛말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헬 조선’이 과연 맞는 말인가?
우선 대한민국은 헬 조선이라 비하하던 그 사이에도 발전을 거듭하여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했다. 외국인들이 K한류를 찾아 서울 명소에서 한복 입고 거닐고 매운 한국음식에 열광하는 것은 왜일까? 역동적인 코리아의 모습이 자신들을 들뜨게 하기 때문이다.
보수, 진보, 중도를 떠나 자유롭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거리에 나와 악을 쓰는 것도 이들에게는 부러운 일이 될 것이다. 오랜 역사에 침체된 문화의 나라에 사는 이들에게는 단체행동같은 경험은 상상못할 일인 것이다.
서울에 와서 가장 좋은 것은 지하철이었다. 만 65세이상 노인에게는 ‘어르신 교통카드’가 나오는데 하루종일 타도 공짜다.
서울 곳곳에 뻗어져나간 지하철은 파주, 춘천, 여주, 의정부, 서울의 동서남북 어디든지 간다. 물론 은퇴자인 입장에서 넓고 쾌적한 이곳이 출퇴근에는 지옥철이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두 번째는 화장실이었다. 지하철역마다, 고속도로 휴게실마다 화장실 수준은 일류급 호텔이다.
세 번째 주문배달이다. 식품이든 음식이든 전화 한 통이면 집앞까지 무조건 온다. 배달의 민족, 쿠팡이츠, 요기요, 배달특급 등 무료배달 경쟁이 상당하다. 밥 하기 싫으면 먹고싶은 음식이 바로 눈앞에 대령한다. 심지어 밥 주는 아파트도 있다.
그런데 헬 조선이라니? 뉴욕에서 오래 살아온 이민자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남의 집 지하실 방 한칸에서 전가족이 살면서 아들이 하버드대에 가고 취직 후 부모에게 큰 집을 사준 이야기도 있지만 새벽부터 잠못자고 일했지만 하는 일마다 실패한 이야기도 있다.
노동의 현장에서 자수성가 했나 하면 다 큰 자식을 아직 늙은 부모가 거두어야 한다, 일터에 가자니 중고차는 자꾸 고장이 나고...차고 넘치는 이민자 사연들은 헬 조선 이상이다.
그래도 한국 사람들은 우리 땅에서 신토불이 음식을 먹고 우리 말 쓰며 살고 있지 않는가. 헬 조선이 세태를 반영하던 당시 작가 이어령은 “헬 조선을 떠나 이주하고 싶은 나라도 천국은 아니다. 현재의 취업난과 양극화는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산다면 같이 겪으라, 서서히 지옥불을 꺼나가라, 떠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 대신 잃는 것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딜 가나 삶은 마찬가지다. 모자란다, 부족하다는 말은 더이상 하지 말고 그 자리를 딛고 일어나라, ‘파라다이스 한국(Paradise Korea)’, 자신이 있는 곳이 행복의 나라이다.
<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