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군과 인연이 닿아 결혼한 후 미국으로 와서 거주하는 교포들이 많다. 그중 한 분이 박지혜의 어머니인 진 밀번 씨이다. 그는 서울에서 결혼한 후 딸 지혜(미국명 밀번 박)를 품에 안았다. 한국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아버지를 따라 어머니와 함께 지혜 양은 미국으로 건너와서 샌프란시스코에서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장애인 인권 증진을 위하여 활발한 운동을 펼쳤다. 자신은 장애자들의 복지를 위하여 태어난 것처럼 이 일에 열정을 쏟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공로가 인정되어 한국계 최초로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로 선정되어 미국 전역에서 사용될 25센트 동전에 그 모습이 새겨지게 되었다. 동전의 앞면에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그 뒷면에는 전동 휠체어에 탄 지혜 양의 모습이 각인되었다. 휠체어에 탄 어려 보이는 지혜 씨의 목에 둘린 기관 삽입 끈은 그가 중 장애인임을 보여준다. 미국인들은 쿼터 달러를 편리하게 사용한다.
그는 태어날 때 근육 퇴행성 질환을 품고 왔다. 성장 과정에서 매일 겪는 장애인으로서의 불편함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이동할 때마다 겪었던 불편함은 자신이 품고 있었던 질환 자체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다. 그는 하루하루 겪었던 일들을 진솔하게 블로그에 적어나갔다. 그의 글을 읽는 독자들은 감동하였다.
그가 이십세가 되던 2007년에는 노스캐롤라이나의 공립 고등학교 교과서에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그의 뜻이 실리게 되었다. 그가 오바마 대통령위원회 위원으로 지명된 일도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장애인 인권 단체인 ‘장애인의 정의(Disability Justice)를 이끌어 나갔다. 그는 주변에 어렵게 살아가는 유색 인종, 저소득층, 노숙자들을 돌보는 일에 열정이었다. 자신이 살고 있던 집을 약자들을 위한 쉼터로도 제공했다. 코로나로 세상이 꽁꽁 묶여 있을 때 그는 특히 장애인, 저소득층 약자들에게 마스크 보급, 긴급 의약품과 위생용품 제공 등 위기 극복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지혜 씨는 오랫동안 어머니의 등에 업혀 등,하교를 하곤 했는 데 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는 전동휠체어를 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매우 불편하였다. 불편한 몸이었지만 그는 꾸준히 노력하여 휠체어 버튼을 자유자재로 조작하며 복잡한 인파 사이로도 운전을 잘할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이 전동휠체어를 ’스테이시(지혜)의 캐딜락‘ 이라고 불러주었다. 이 휠체어는 지혜 씨에게 편리함도 주었지만 근육을 단련시키는 기회를 많이 감소시켰다. 고민 끝에 어머니는 자주 딸을 부축하여 근육운동을 하게도 했다. 어머니는 딸의 몸이 점점 쇠약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장애인들이 겪는 마음의 아픔을 더 깊이 볼 수 있었다.
애지중지하던 휠체어를 뒤에 두고 딸은 밝은 햇살이 비치던 지난해 5월 19일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머니는 딸의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휠체어를 두고 고심했다. 장례식이 끝난 후 휠체어가 필요한 다른 장애인을 위해서 기꺼이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딸을 생각나게 하는 휠체어는 곁을 떠나지만 7억개의 쿼터 달러 동전에 새겨진 딸은 오늘도 휠체어를 타고 환한 모습으로 달려올 것만 같았다. 지혜(Stacey Park Milbern)는 엄마 곁에 영원히 머물 것이다. 생전에 아끼던 휠체어와 함께.
전병두 수필가는 서북미수필가협회 회원으로 오리건주 유진에 거주하고 있다. 상록수 문학 수필부문 신인상(2023), 제19회 뿌리문학 수필부문 신인상(2023), 타고르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뿌리 문학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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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두 서북미수필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