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름의 동행

2025-02-10 (월) 12:00:00 조형숙 수필가 / 미주문협 회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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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시간 freeway를 타고 아들네로 향한다. 오늘 따라 38마일이 무척 멀게 느껴진다. 사방은 점점 검은 색깔을 입혀 가는데 하늘에 뜬 달은 샛노랗게 둥근 얼굴로 웃고 있다. 달과 별과 늦은 해가 함께 있었다. 문득 서로 다름의 동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는 우주의 중심이며 새로운 하루를 가져다 주고 낮의 정점을 맡는다. 달은 밤의 어두움을 정서로 감싸며 온유한 빛을 비추는 편안함을 보인다. 별은 먼 곳에서 고요하게 소곤거리며 저마다의 빛을 내고 있다. 셋은 늘 함께 있으면서 고유의 역할을 수행한다. 서로의 다름으로 균형을 이루는 신비로운 존재들이 하늘을 공유하며 어우러져 한 우주를 이룬다. 해가 저물고 달이 뜰 때, 별이 그 사이를 잇고 한 순간에도 홀로 있지 않는 하늘의 친구들은 다름의 동행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이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아들이 주일 아침 5시간 동안 심장수술(bypass)을 받았다. 병원에 있어야 하는 며느리 대신 아이들을 돌보아야 했다. 아직은 중환자실에 있어 톡으로 소식만 듣는다.


월요일 아침 아이들을 등교시키는 거리는 조용하다. 익숙지 않은 동네에서 느끼는 아침 공기가 신선했다.아이들은 각자의 할 일을 잘 하고 있다. 큰 손자는 나를 도와 음식을 만들었다. 둘째는 학교에서 트럼펫 연주를 하고 쌍둥이는 하교 후 나란히 컴퓨터 앞에 앉아 숙제를 한다. 며느리는 병원과 집을 오간다. 부모가 병원에 있는 동안 아이들과 나는 하나가 되어 지내며 더 끈끈하고 가까워지는 경험을 한다. 가족의 상처를 함께 아파하고 대화를 주고 받는 시간이 너무 귀했다.

입원실에 들어선 손녀는 아빠의 무릎이 그립다. 이리 오라고 두 팔을 벌리는 아빠에게 조심스럽게 안긴다. 아빠의 손길이 좋아 배시시 웃는다. 아들은 세로로 길게 찢어진 가슴이 아파 숨 조차 쉴 수가 없었다. 눕지도 앉지도 못하는 고통이었다. 약을 먹고 괴로운 시간이 흐르고 아픔이 조금 사라지면 수술로 긴장했던 어깨와 등이 아프기 시작한다. 혈관을 꺼내느라 뚫은 발바닥과 종아리도 뻐근하다. 큰 상처 속에 작은 아픔들이 숨어 있었다. 아이들 앞에서 찡그리지 않았던 아픔이었다. 얼굴에는 미소가 있으나 미소 속에 아픔을 숨기고 있었으리라. 아프다고 찡그리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짧은 문병의 시간 후 병실 문을 나서는 아이들 “또 올게요 아빠” 빠른 퇴원을 기대하는 손길 위에 저녁 해가 비춘다.

가족은 극복하려는 무언의 목표를 묶어 가는 강력한 끈이다. 어려운 시간을 만나면 고난이 없던 때, 평화스럽던 행복의 가치가 더 커진다. 당연하게 여겼던 엄마의 손길이 더욱 절실하고 귀한 것을 알게 된다. 아빠와 함께 했던 저녁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삶의 중심에 있는 가족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만으로도 귀중한 사람들이지만 너무 가까이 있어 소중함을 잊고 살아간다. 각 자가 할 일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하고 있지만 자기의 역할에 충실 할 때 작은 우주는 풍요로운 조화를 이룬다. 일상에서 무덤덤하게 지나쳤던 것들을 사랑하게 된다. 어려움속에서 서로 어깨동무로 이겨내는 동행의 사랑이 아름답다. 가족은 각기 다름의 동행이다.

조형숙 수필가는 미주문학 수필부문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미주문협 회계국장을 역임했다.

<조형숙 수필가 / 미주문협 회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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