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대전 중 폴란드 땅에서는 한밤중에 갑자기 도와달라고 문을 두드리는 유대인이 종종 있었다. 이때 집주인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죽음의 위기에 처한 이웃에 대한 인도적 감정과 나치에 의해 발각될 경우 온 가족이 위험에 빠지게 될 상황이 초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주인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을 숨겨주기로 결정하기까지는 단 2초가 걸렸을 뿐이다. 2초는 바로 그 사람이 구조를 결심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의 최대치다. 찰나의 연속을 살아가는 인생은 영원성을 지향한다. 기독교적 표현을 빌리면, 거듭된 순간의 유혹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이다.(최호근의 “시간 감각과 역사의식‘ 중에서)
휘하의 3천명 군사를 이끌고 하루 종일 다윗을 쫓던 사울 왕은 지치고 기진했다. 사울 왕은 잠시 용변을 보기 위해 진중에서 벗어나 동굴 안으로 진입했다. 엔게디 황무지 깊은 동굴은 칠흑같이 깜깜했다. 겉옷으로 발을 가린 채 은둔하고 있는 사울을 지켜보던 다윗은 조용히 다가서서 사울 왕의 옷자락을 베었다.
전쟁 중에 적장의 옷자락을 베어들고 서있는 것은 단호한 행위다. 상대방을 죽이겠다는 예비행위이다. 벰을 당한 사람은 군인으로서 생명이 끝났음을 의미하고, 더 이상 미래가 없음을 예시(豫示)한다. 하지만 깜짝할 순간에 사울의 옷자락을 벤 다윗은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다윗은 사울 왕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숨소리마저 제어했고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다윗은 사울 왕의 옷자락만 벤 것으로 모든 행위를 끝냈다. 다윗의 이 특별한 행위의 순간은 2초처럼 짧았지만 자세는 진실했다. 그 여운과 파장은 멀리 번져가는 향(香)처럼 길었다. 장엄했고 아름다웠다. 다윗은 준엄하게 자신을 절제하므로 살인을 피했다. 그 당시 600 여명의 다윗의 부하들은 오합지졸 같았다.
규율도 질서도 서 있지 않아 군대라고 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사건이후 이 오합지졸의 무리가 일사불란, 막강한 에너지를 지닌 정병으로 거듭났다. 이제 다윗은 심오한 인격적 감화력과 함께 권력의 실체가 존재하는 명실상부한 정치적 리더가 되었다.
2초는 진실의 힘이 작용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망하고 흥하는 것이 2초 같은 순간에 좌우될 때가 많다. 순간의 감동이나 결단이 사람을 도약으로 이끈다. 비범한 리더는 진실의 향기가 묻어나는 ‘순간의 감동’을 일으켜 사람의 마음을 도약시키는데 탁월하고 민감하다. 훌륭한 리더는 악연의 만남에서 파생되는 순간조차 무의미하게 놓치지 않는다. 이것이 다윗 인격의 위대한 점이다.
유다 신학자 랍비 유다 하나시(Judah ha-Nasi)는 말했다. “일생에 걸쳐 영원을 얻는 사람이 있고, 짧은 순간을 하나님께 드려서 영원을 얻는 사람도 있다. 한 순간의 선함이 일생과 맞먹을 수 있고, 여러 해에 걸쳐 방황하며 잃어버린 것을 짧은 순간에 회복할 수도 있다. 진실이 묻어나는 순간의 힘은 이처럼 귀하다.“
운명을 바꾸는 도약의 기회는 먼 곳에 있지 않다. 곁에 있다. 다만 도약을 일으킬 순간의 힘을 눈치 채지 못할 뿐이다. 당신은 리더인가. 당신의 인생의 세 번 쯤은 하나님의 마음과 합한 다윗처럼 살아보라. ‘2초의 진실의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깨어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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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