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마르 입구 원형교차로에 있는 12m 높이의 축소된 자유의 여신상.
프랑스 동부의 콜마르(Colmar)라는 도시를 소개한다. 이곳은 독일 서남부 지역과 마주하고 있어 독일과 스위스도 쉽게 여행할 수 있다. 자동차로 콜마르에서 독일의 프라이부르크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스위스 바젤에서 콜마르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도 1시간 남짓이다. 하지만 파리에서 콜마르까지 가려면 무려 6시간이나 걸린다.
그러므로 콜마르를 여행하려면 프라이부르크 또는 바젤에서 부터 여행을 시작하면 유리하다. 또한 콜마르 주위에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마을들이 무려 20여개나 위치해 있다. 프랑스 또는 유럽에서 한 달 살기에는 최적의 도시인 것이다. 콜마르로 들어 가는 입구 원형교차로에는 12m 높이의 축소된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져 있다.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높이 93m)을 제작한 프레데릭 오귀스티 바스톨디가 바로 콜마르 출신이기 때문이다. 도시 안에는 바르톨디 박물관도 있다.
구시가에는 독일식 목조 건축물들이 많다. 콜마르가 독일처럼 보이는 것은 독일 영토였던 시기가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콜마르 여행의 중심은 쁘띠 베니스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수상 운송으로 북적이던 곳이다.
지금은 관광 보트가 많이 다닌다. 구시가는 걷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목조 건축물 사이로 운하가 흐르고 예쁜 상점도 많기 때문이다. 출창이 고풍스러운 ‘메종 데 테트’라는 17세기 초에 지은 건축물도 있다.
당시 출창은 부와 명예를 상징했다. 사각 종탑이 높게 솟아 있는 생 마르틴 교회는 알자스 지방의 유서 깊은 교회다. 1234년 짓기 시작해 1365년에 완공했으니 건축 기간만 130년이 걸렸다. 내부에는 1755년 제작된 파이프오르간, 13세기에 제작된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명하다.
콜마르에서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은 운터린덴 박물관이다. 박물관에는 마르틴 숀가우어, 대 루카스 크라나흐,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등 독일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의 작품이 많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은 그뤼네발트가 1512년부터 1516년 사이에 그린 ‘이젠하임 제단화’다. 제단화는 이젠하임 성 안토니오회 수도원 병원에서 의뢰하여 그렸다.
세 패널의 접이식 제단화는 모두 합치면 열 두개의 성화가 있다. 첫 번째 패널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과 매장되는 예수님, 두 번째 패널은 천사들의 연주와 아기 예수의 탄생, 세 번째 패널에는 성 안토니우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 제롬이 조각돼 있다. 높이 2.7 m, 넓이 4 m에 이르는 제단화는 최근 복원하여 방금 그린 것처럼 컬러풀하다.
16세기 유럽에는 불에 탄 것처럼 피부가 찢기고 괴사하며 뇌신경까지 파괴하는 맥각중독 환자들이 많았다. 맥각중독은 곡물에서 발생한 맥각균 섭취로 팔다리에 괴저를 일으키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그뤼네발트는 환자들을 관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한 후 심혈을 기울여 제단화를 제작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그림에서 화가는 맥각병 환자처럼 수없이 찢긴 피부, 휘어진 십자가, 창에 찔린 오른쪽 옆구리, 손과 발에 박힌 엄청난 크기의 대못, 면류관 가시에 찔려 신음하는 연약한 인간 예수를 첫 번째 패널에서 처절하게 묘사했다. 이것을 본 환자들은 자신들의 아픔 보다 훨씬 더 고통받는 예수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다.
500년이 지난 지금도 이젠하임 제단화는 전세계에서 온 수많은 방문객의 심금을 울린다. 바라만 봐도 눈물이 솟구치는 최고의 슬픈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가는 두 번째 패널에서 천사들의 연주, 아기 예수의 탄생, 예수님의 부활을 그렸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고 병에서 자유로워진다는 희망을 환자들에게 준 것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서 53장 5절에 있는 말씀이다. 이젠하임 제단화는 일생에 한 번은 반드시 감상해야 한다. 뜨거운 은혜와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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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은 <여행 칼럼니스트로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하고 있다. 페어팩스 카운티 공립도서관, 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