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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덥지 못 한‘보건국방’ 최전선

2024-12-1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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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의학이론들을 고발해오고 있는 의료전문가 크리스토퍼 완제크는 자신의 책 ‘불량의학’(Bad Medicine)에서 앤드류 웨이크필드라는 ‘의사’를 엉터리 주장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린 대표적 인물로 고발한다. 웨이크필드는 1998년 권위 있는 의학전문지인 ‘랜싯’에 자폐증과 백신간의 관계에 대한 조사내용을 발표했다. 그는 그저 자폐증 발생이 생애 첫해에 맞게 되는 백신의 접종시기와 맞아 떨어진다는 데이터를 발표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마치 백신이 자폐증의 원인인 것인 양 둔갑해 버렸다, 일부 사람들이 난리법석을 피우면서 웨이크필드의 이론은 그럴듯한 것으로 퍼져나갔다, 그러자 웨이크필드는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무서운 주장을 마구 떠들고 다녔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하면서 돌아다닌 지역들 가운데는 미네소타도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지난 2017년 미네소타 지역에서는 난데없이 홍역을 기승을 부렸다. 홍역은 한때 많은 어린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무서운 질병이다. 하지만 1963년 홍역백신이 소개된 이후 이런 일은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2000년 미국은 홍역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랬던 홍역이 미네소타 지역에서 다시 기승을 부린 것이었다, 의료당국이 조사해보니 홍역 백신이 자폐증을 부른다는 웨이크필드의 엉터리 주장에 현혹된 부모들이 자녀들의 홍역접종을 기피해 벌어진 사태였다.

자폐증은 태어나기 전에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출생 이후에는 거의 발병하지 않는다. 미네소타의 홍역사태는 무책임한 엉터리 의사와 어리석은 부모들이 함께 빚은 의료재난이었다.

그런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이런 시대착오적인 사태의 재발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로 지면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가 백신 회의론자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 아동 백신에 들어있는 보존제가 자폐증과 연관이 있다는 등의 음모론을 제기한 바 있다.

이런 의혹에 대해 케네디는 자신은 백신 반대론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백신을 접종 받은 어린 아이들이 천식과 앨러지 같은 질병에 걸릴 위험이 더 높다는 연구가 있다”며 백신에 대한 여전한 불신을 감추지 않고 있다. 장관에 지명되자 백신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허가 과정에서 안정성 기준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은 굽히지 않고 있다. 당연히 제약업계는 그의 지명에 상당히 긴장하는 분위기다.

케네디뿐 아니라 트럼프가 식품의약국(FDA) 책임자로 지명한 외과의사 마티 마카리와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수장으로 발탁한 데이브 웰던 전 연방하원의원 역시 보건인식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온 사람들이다. 마카리는 코로나 시기 FDA의 대응을 “강압적이며 관료적”이라고 비판했으며 웰던은 CDC가 백신의 안전성보다 접종률만 우선시했다고 비난했다.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대규모 전염병의 발병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암울한 전망이다. 보건전문가들은 가장 유행 가능성이 높은 병원체로 조류인플루엔자 H5N1을 꼽고 있다.

‘불량주장’을 신봉하는 인물들을 보건행정 책임자로 지명한 트럼프는 코로나가 창궐할 때 안일한 인식과 잘못된 대처로 피해를 키웠던 우두머리 책임자였다. 또 다시 팬데믹이 엄습할 경우 과연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 우려와 의구심이 드는 걸 기우로만 치부할 수만 없는 것은 국민 건강을 지키는 ‘보건국방’ 최전선에 서있는 인물들의 면면이 전혀 미덥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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