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시끄러웠던 한 주였다.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전국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나 국회의 신속한 대응으로 단 몇 시간만에 이를 해제해야 했다. 곧바로 뒷수습에 나선 대한민국 국회는 현재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런가하면 프랑스 하원은 60여년만에 처음으로 총리와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했다. 얼핏 보면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 보이는 이들 사이에는 민주주의 제도의 위기라는 공통된 테마가 저변에 깔려 있다.
겉으로 보기에 한국은 놀랄만한 ‘성공신화’를 써냈다. 경제는 50년 연속 연 5% 이상 성장했는데 이는 지구상에서 타이완을 제외하곤 그 어떤 나라도 이루지 못한 기록이다. 국민 1인당 소득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이제 일본보다 부유하다. 그럼에도 한국은 뿌리 깊은 양극화와 극렬한 정치 싸움으로 혼란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 배경에는 지난 2년 반동안 정국을 교착상태에 빠뜨린 진보 야당과 보수 대통령 사이의 첨예한 대립이 자리잡고 있다. 야당은 대통령이 공권력을 이용해 정적과 언론을 공격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대통령은 거대 야당이 권한을 남용해 행정부 구성원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있다고 맞받아친다. 이같은 양측의 다툼은 아마도 대통령 자신에 대한 탄핵으로 끝날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도 한국과 스토리는 다르지만 운율은 거의 맞아 떨어진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수년간 개혁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극심한 반발을 초래했다. 연금수령 개시 연령을 끌어올린 그의 마지막 주요 개혁을 시행하기 위해 마크롱 대통령은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던 절차를 통해 국회를 우회하는 편법을 동원했다. 지난 선거에서 마크롱의 중도 정당은 궤멸됐고 국회를 장악한 극우파와 극좌파는 서로 손을 맞잡고 총리를 끌어내리는데 성공했다.
한국과 프랑스가 지닌 공통된 주제는 민중이 점차 전통적인 민주제도와 이를 운영하는 엘리트층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23년의 퓨리서치 센터 서베이에서 미국 성인의 85%는 선출직 관리들이 “나와 같은 사람들의 견해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체 응답자의 80%는 연방 정부를 향한 분노와 좌절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통치 엘리트들에 대한 분노는 미국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독일에서 일본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역에서 주류 정당들은 여론의 호된 질책에 위축되고 있다.
우리는 격변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필자가 지적했듯 지금은 경제적 기술적, 그리고 문화적 측면에서 ‘혁명의 시대’다. 낡은 패턴은 쓰레기처럼 버려지고 있다. 한국은 더 큰 사회적 열망과 결합된 저성장과 인구감소의 신시대로 진입했다. 유럽이 직면한 새로운 시대의 특징으로는 러시아의 위협, 중국과의 경제적 경쟁, 지도자로서의 너그러움을 잃어가는 미국이 꼽힌다.
민중은 많은 사회, 특히 미국에서 신뢰의 하락을 목도했다. 그러나 작가인 데렉 톰슨이 지적하듯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단순한 신뢰 하락이 아니라 신뢰의 이동이다. 민중은 의료기관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고 점차 앤르류 부허만, 피터 아티아 등 파드캐스터들과 심지어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와 같은 정치인에게로 신뢰를 옮겨가고 있다.
전통적 언론매체에 대한 신뢰를 잃은 민중은 개별적인 저널리스트와 해설가들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수천만 명의 공화당원들은 그들의 정당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채 도널드 트럼프라는 단 한명의 개인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제도에서 개인에게로의 신뢰축 이동은 한때 거대 조직의 전유물이었던 영향력을 개인이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한 신기술로 인해 가능해졌다. 문제는 자유 민주주의가 제도와 절차에 의해 지탱되어 왔다는 점이다. 개인에 의한 통치는 결국 변덕에 의한 지배로 끝난다. 이번해 노벨 경제상은 간단한 질문을 제기한 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들이 던진 질문은 대부분의 국가가 부유하고 성공적이 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고, 일부 소수 국가들이 성공한 비결은 무엇인가로 요약된다. 이들이 내놓은 대답은 강력한 제도였다. 가난과 그듯된 통치에서 벗어난 한 줌의 국가들은 개인의 지배를 뛰어넘는 선량하고 공정한 제도를 만들었다. 바로 이것이 자원이 빈곤한 내륙국인 스위스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중 하나로 만든 이유인 동시에 동일한 조건의 다른 내륙국들이 오작동의 늪에 빠진 이유다. 또한 동남아시아의 습한 모래톱 땅에 자리잡은 싱가포르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평균 소득을 자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유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닌 절차를 강조한다. 우리는 설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과정을 존종한다. 절차를 무시하고 제도를 약화시키더라도 원하는 바를 신속하게 얻으려는 드라이브는 대단히 위험하다. 트럼프가 충성분자들로 차기 행정부의 요직을 채우려는 시도 역시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조 바이든이 사법시스템의 운영을 방해하지 않겠다던 대국민 약속을 어기고 아들을 사면한 것도 그렇다. 만약 일시적인 문제로 인한 좌절감에서 자유 민주주의를 구축해온 지속적인 제도를 포기한다면 우리는 현대사에서 인류가 달성한 가장 중요한 성취 중 하나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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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