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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칼럼> 장준식 목사/ 밀피타스 세화교회

2024-11-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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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도의 핵심

조지프 콘래드(Joseph Conrad)의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이라는 소설이 있다. 1899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제국주의 시대에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과 제국주의의 폐해를 고발하는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말로는 콩고강을 따라 상류로 항해하며, 현지에서 상아 무역을 주도하는 커츠(Kurtz)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커츠는 문명화된 유럽인으로서 아프리카에 왔지만, 점차 원주민들을 지배하고 착취하며 도덕적으로 타락한 모습을 보인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 내면의 어둠과 제국주의의 위선을 비판한다.

이 작품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의 원작으로도 유명하다. 영화는 소설의 주제를 베트남 전쟁으로 옮겨와 인간의 본성과 전쟁의 광기를 묘사한다. 코폴라 감독은 영화 ‘대부’를 만든 감독으로도 유명하다.소설 암흑의 핵심의 주인공 이름과 영화 지옥의 묵시록 주인공의 이름이 같다. 커츠(Kurtz). 코폴라 감독은 소설 ‘암흑의 핵심’이 고발하고 있는 문제 의식을 베트남 전쟁에서도 그대로 드러낸다. 그것을 상징하기 위하여, 그리고 ‘암흑의 핵심’ 작가인 조지프 콘래드를오마주(감사와 찬양)하기 위하여 주인공 이름을 지옥의 묵시록에서도 그대로 쓴다.

위의 소설과 영화는 커츠라는 인물을 통해서 제국주의와 전쟁의 광기, 그리고 인간의 어둠을 보여준다. 제국주의자들과 전쟁주의자들이 이 작품들을 직면한다면, 다음과 같은 음성을 들을 것이다. “당신이 바로 탐욕과 폭력으로 똘똘뭉친 커츠(Kurtz)요!”


마가복음은 기독교 제자도의 핵심을 보여준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마가복음은 ‘길’ 위의 복음을 강조한다. 제자도는 길을 가는 것이라는 뜻이다.길 위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묻는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막 8:29).여기에서 베드로는 아주 유명한 고백을 한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You are the Messiah.) 주는 메시아이십니다.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를 칭찬하지 않으신다. 당신을 메시아라고 부르는 것을 삼가시고, 자기를 인자로 소개한다. 왜 그럴까?

‘메시아’는 정치적 색채가 짙은 호칭이다. 예수님 당시의 1세기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을 이룰 왕족이라고 생각했다. 제국들의 끊임없는 침략과 통치를 받아온 이스라엘은 언젠가 힘으로 압도하는 영웅(메시아)이 나타나 무력과 폭력으로 그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과 더불어 다윗 왕국의 영광을 되찾아줄 ‘구속적 폭력의 신화’(Myth of redemptive violence)를 믿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꾸짖는 이유는 베드로가 이러한 유대인들의 신화를 투영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메시아는 악당을 압도하는 힘을 지닌, 그들의 폭력을 더 큰 폭력으로 제압하는 영웅이다. 마치 영화 범죄 도시(Round-up)에서의 마동석 같은 이미지다. 그런데, 예수님이 새롭게 정의하시는 메시아는 일반 사람들과 베드로가 고백하고 있는 그런 메시아가 아니다.“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는” 메시아이다.

‘암흑의 핵심’과 ‘지옥의 묵시록’은 인간과 역사의 어둠을 드러낸다. 반면 제자도의 핵심은 그 어둠을 몰아내는 빛을 드러낸다. 구속적 폭력의 신화를 끊어내는 것이 제자도이다. 힘을 힘으로, 폭력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어둠을 멈추고, 어둠을 빛으로 몰아내는 따스함이 제자도이다. 십자가는 내가 저지른 폭력을 용서 받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메시아)처럼 폭력을 끊어내고 어둠을 몰아내는 존재로거듭나는 자리이기도 하다. 제자도는 이렇게 따스하고 전복적이다. 이런 기독교 신앙이 나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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