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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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의 산골 일기] 도시로 나들이 나가는 날

2024-11-18 (월)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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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살 때 할머니는 날망에 있는 귀출 네 집에 자주 마실을 다녀 오시곤 했다. 날망은 충청도 방언으로 언덕 위를 말하고 마실은 이웃에 놀러 간다는 뜻이다. 뉴저지 날망에 사는 나는 허드슨 강 건너 뉴욕으로 마실 갈 때가 있다. 텃밭에 농한기가 찾아오면 그런 일이 더 잦을 것이다. 옛날 동요에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신다’ 고 했는데 나는 기차타고 뉴욕의 큰 저자거리로 나간다.

뉴저지는 미국 최초 13개 주의 하나라는 자부심이 크다. 원래는 뉴욕과 같은 주였다가 분리돼 나온, 미국에서 네 번째로 작은 주이지만 인구는 11 번째로 많으며 인구밀도는 두 번 째이고 14명의 선거인단을 갖고 있다. 뉴욕에 직장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환경이 좋은 뉴저지에 집을 두고 있어 마치 서울의 분당이나 로스앤젤레스의 어바인 처럼 뉴욕의 위성도시 같은 역할도 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이면 뉴저지와 뉴욕을 오가는 교통량이 폭주한다. 그래서 나 같은 나들이객에게는 바쁜 시간을 피한 기차여행이 안성맞춤이다. 뉴저지 산골동네 역에서 왕복 16달러 30센트로 기차를 타면 1시간 20분 걸려 대도시 뉴욕의 펜 스테이션에 도착한다. 친지들과 만나는 한인 타운 거리는 거기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고 뉴욕의 사방으로 뻗어가는 지하철역이 지척에 있다.


나는 기차타기를 좋아한다.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로스앤젤레스에 있을 때도 간혹 남들은 잘 알지 못하는 메트로 링크 등 대중교통을 즐겨 이용했었다. 지금은 지워버렸지만 오랫동안 나의 버킷 리스트에는 연해주에 있는 블라디 보스톡에서 모스크바 까지 가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타기가 1번으로 들어 있었다. 그러나 캐나다 횡단열차 비아레일 여행은 아직 리스트에 남아 있다.

그날 아침은 다른 때와 달리 뉴욕 나가는 일정을 서둘렀다. 점심은 김 목사님과 한인 타운에서 12시에 만나 따로국밥을 하자고 약속해놓고 서둘러 이른 아침에 기차를 탔다. 11월에도 덥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어 지금이 어느 계절인가 했었는데 차창 밖으로 가을이 기별 없이 떠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뉴저지 트랜짓의 2층으로 된 열차는 시야가 넓어서 좋다. 숲속과 마을을 번갈아 달리는 철로 위로 낙엽이 소복이 깔려 있다. 가로수 가운데 더러는 아직도 노란 잎 새를 품고 있어 나신(裸身)을 면한 굳센 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창밖의 먼 들판에서는 억새풀들이 체머리를 흔들며 가을을 전송하고 있었다.

역에서 내려 맨해튼 남동쪽으로 걸어가 워싱턴 스퀘어 파크 옆 그리니치빌리지를 찾았다. 1,800년 후반기 미국 각처에서 가난한 보헤미안들이 모여들어 자유롭게 예술 활동을 벌이던 곳, 그 가운데 소설가 오 헨리가 ‘마지막 잎 새’ 를 썼던 바로 그 동네여서 낙엽이 다 지기 전에 꼭 와보고 싶은 곳이었다. 작품의 배경이 되었음직한 3층 벽돌집과 그가 자주 찾은 ‘피츠 태번’이라는 목로집도 들어가보며 사랑과 희생을 그린 오 헨리의 작품세계를 회상했다.

오늘도 ‘마지막 잎 새’ 의 존시처럼 절망에 처한 이웃은 도처에 있다. 그들에게 베어먼 같은 희생자는 아니어도 곁에서 함께 아파해주는 수 같은 위로자 가 많아진다면 세상은 한결 살만한 곳이 될 텐데--. 해 떨어지기 전 기차시간에 맞추어 나오다가 한인 서점에 들러 한 강 작가의 책 한권을 사가지고 왔다.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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