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삶과 생각] 사피엔스, 어디로 가는가?

2024-11-04 (월) 신응남/변호사·서울대 미주동창회 명예회장
크게 작게
7만년 전, 호모사피엔스는 아프리카의 한구석에서 자기 앞가림만 신경쓰는 별 중요치 않은 동물이었다. 그러나 호모사피엔스가 신체적으로 월등한 호모네안델탈인 등을 제압하고,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돌연변이적으로 뇌의 무게와 기능이 커진 인지혁명의 과정을 거쳐, 종간 소통하며 협동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는 지구의 주인이자 생태계 파괴자인 호모사피엔스가 과학혁명으로 신이 되려고 한다면서, 힘은 세지만 책임의식 없는 신이 가장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인간이 당장 신이 된다면 틀림없이 그런 신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신이 있다고 믿으면서 간절하게 기도한다. 그들은 신의 영광을 위해 광장 한복판에서 폭탄을 터뜨리기도 하고, 같은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서로를 죽이기도 한다.


적자생존 이기적 유전자는 생존에 유리한 친족이타주의를 진화시켰지만, 문화유전자 밈(Meme)은, 유전 연관도가 전혀없는 사람에게까지 이타주의 적용범위를 차츰 그러나 느리게 확장해 나갔다. 생물학적 진화에 역행하는 이타적 행동, 그것을 인류는 문명시작 오래전부터 정의롭고 도덕적 행동이라고 칭송했다.

역사 속에서 국가의 공권력하에 저지른 죄악을 국가적 차원에서 사죄한 독일의 행동은 매우 드문 예이다. 보통은 일본처럼 제국주의 침략과 강제동원, 강제징용, 인권유린 행위를 부인한다. 베트남 전쟁에 관해서는 어느 국가도 사죄하지 않았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며 지구는 하나의 지구촌이 되었다. 그러나 같은 ‘지구인’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국가는 드물다. 80억을 넘긴 호모사피엔스는 여전히 200여개의 국민국가로 나뉘어 산다. 인종, 종교, 언어,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와 그들로 나누며 이념과 체제가 다르다고 진영을 나눠가며 대립한다.

비록, 인류가 사라진다고 해도 지구존재에는 아무 문제 없다. 다윈의 학설대로, 다른 종이 호모사피엔스의 자리를 채울 것이다. 기후위기와 핵폭탄에서 우리 자신을 구하려면 인류 전체가 협력해야 하는데, 호모사피엔스가 그 일을 때맞춰서 잘 해낼 것이라고 확신할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

21C 들어서서, 우리는 우리를 노예로 만들 가능성이 있는 지적설계, 유전자 조작, 그리고 인공 지능(AI)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실존적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단결하고 협동하는 대신, 국가 및 진영간 갈등은 고조되고 글로벌 협력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현, 중동과 우크라이나 전쟁상황을 보면, 또 다른 세계대전의 위기로 가는 것이 아닌가 라는 우려를 자아낸다.

생물학적 진화의 시간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유전자가 지배하는 이기적 본능을 어느정도 억제하기 위해서, 인류에게 남겨진 임무는 폭력적 야성을 다스리기 위한 이성과 양심을 온전히 보전하는 일이다.

서구문명의 산실인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출간하며, 인간에게 필요한 윤리학 교육에 특히 관심을 보였다. 로마의 정치사상가 키케로는, 그의 [의무론]에서, 인간의 위대함이란, 각자가 속한 공동체를 위한 헌신으로 나타날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고양이를 버리다]에서 “역사는 의식과 무의식속에서 다음 세대로 옮겨가는 것이다. 지우고 싶은 역사라도, 키우던 고양이를 버리듯 그냥 버릴수도, 버려지지도 않는다며, 모든 역사가 남긴 상처를 운명적으로 안고 가야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한 강의 5.18을 다룬 [소년이 온다] 에서 작가는 “내가 죽은 뒤 제대로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라고 말한다. 작가는, 아마도 하루키의 역사 인식을 같이했던 듯 하다.

한민족이 6.25 동족상잔의 슬픈역사를 치유하며 안고가야 하듯, 5.18의 상처도 우리들의 아픈 역사로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루쉰은 [아큐정전]에서 말한다. “ 희망은 땅 위의 [길]과도 같은 것이다. 본래 땅위에는 길이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며 진지한 대화와 협력을 통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길 제시한다.

사피엔스가 그렇게 현명하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 자기 파괴적인가? 우리가 속한 지구촌 공동체를 지키기위한 의무에 왜 그리 무책임한가?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신응남/변호사·서울대 미주동창회 명예회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