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수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초박빙이기 때문에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근 승패를 결정하는 경합주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상승세가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세계경제가 파괴적인 무역전쟁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2.0 행정부가 들어설 경우 통상·기후 대응 정책이 크게 달라진다. 첫째, 수소 관련 정책을 제외한 친환경 정책들은 대부분 폐기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1기 때와 마찬가지로 취임 즉시 파리기후변화협약 재탈퇴를 공언했고 화석연료 산업 관련 규제 철폐를 약속했다. 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폐지하고 자동차 연비 및 전기차 의무 판매 규제를 철폐할 것을 주장했다.
둘째,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견제를 한층 강화할 것이다. 중국의 최혜국(MFN) 지위 철회, 핵심 인프라에 대한 중국의 소유권 제한 강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적으로 결성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폐기도 추진할 예정이다. 아울러 공급망 재편 정책을 통해 전면적인 중국과의 탈동조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모든 핵심 품목의 중국 수입을 4개년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한편 중국으로부터 아웃소싱하는 모든 기업에 대한 연방 조달 계약을 금지할 계획이다.
셋째, 미국의 관세율을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릴 수 있다. 모든 수입품에 대한 10~20%의 보편적 기본 관세 부과, 중국산 상품에 대한 60% 관세 적용, 교역 상대국이 미국보다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해당 국가에 그 이상의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트럼프상호무역법(TRTA) 추진 등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만일 공약대로 시행된다면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현재 2.3%에서 최소 17%로 급격하게 오른다. 트럼프는 이러한 관세 인상이 미국으로 일자리를 다시 가져올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경제 전문가는 이 정책이 초래할 부정적인 효과가 훨씬 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식료품 등 연간 1조 달러 이상을 수입하고 있는 미국이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하고 이는 금리 인하를 지연시켜 달러 강세가 유지된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 약화와 수출 감소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모건스탠리는 이로 인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4% 정도 줄 것으로 관측했다. 보복적 무역정책의 확산은 세계 무역을 크게 위축시키고 글로벌 금융시장과 주식시장에도 커다란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트럼프가 당선되더라도 상·하원 구성과 경제 상황에 따라 정책 내용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1기 때도 트럼프의 공약 이행률이 상당히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도 이미 타결된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뒤집고 합의된 금액의 9배에 달하는 100억 달러를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가 2018년(177억 달러) 이후 5년 연속 흑자 폭이 확대돼 2023년에는 513억 달러로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점도 문제 삼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0 행정부는 대한국 무역수지 적자가 불공정 거래 관행, 보조금, 환율 조작 등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고 인식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을 요구할 수 있다.
급변하는 환경과 트렌드 변화에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하는가가 운명을 결정하는 ‘속자생존(速者生存)’ 시대에 기업은 기업대로 타성에서 벗어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을 되찾아야 하고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해 나가야 한다. 설사 트럼프가 재집권하더라도 트럼프 1기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공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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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수 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