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은 지금] 대격변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심을 것인가

2025-08-13 (수) 12:00:00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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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는 이미 봄이되어도, 매서운 한파가 끝없이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농부는 춥다고 밭을 갈지 않는 법이 없다. 씨앗을 뿌릴 때를 놓친다면, 가을에 거둘 것은 쭉정이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적의 침략이 목전에 닥쳐와도, 우리는 밥을 지어야 하고 농사를 지어야 한다. 공포에 사로잡혀 우왕좌왕한다면, 적이 오기 전에 스스로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다.

■풍전등화(風前燈火)의 한인 커뮤니티

지금 미국 사회는 그야말로 대격변의 시대를 맞이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민주주의, 자유, 평등, 인권이라는 가치가 흔들리고 있으며, 이에 기반한 사회 시스템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소수계 이민자로서의 두려움이 엄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미 추방 명령을 받은 이민자들은 물론이고 영주권자와 합법적 신분을 가진 이민자들도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영화에서나 볼 법한 열악한 구치소에 대규모로 수감되고 있고 2달이 걸리지 않아 추방되고 있다. 그리고 국토안보부 예산이 여섯 배나 증액되면서, 더 많은 이민국 단속 요원들이 훈련을 받고 있다. 조만간 폭풍처럼 이들이 이민자 커뮤니티에 몰아닥칠 것이다. 그리고 업소마다 I-9 양식을 요구하는 단속이 들이닥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단속으로 직원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관세로 인한 물가 폭등은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한인들에게 생존의 기로를 묻고 있다.

이 모든 변화는 지난 대선에서 미국인들이 선택한 결과이며, 그 공약이 실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후대의 평가에 맡겨야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격변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격변이 지난 수십 년간 한인 커뮤니티의 근간을 이루었던 소규모 사업체들을 무너뜨리고, 그에 따라 직능협회들마저 와해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흔들리는 기둥,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할 때

그렇다고 이 격변기의 시기에 넋 놓고 있을 수 없다. 70~80년대 이민 1세대가 땀과 눈물로 일궈낸 직능 조직들과 한인회가 그동안 한인 커뮤니티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특히 뉴욕 한인회는 맨해튼의 브로드웨이를 개척했던 경제인협회, 델리 그로서리협회, 세탁협회 등 수많은 직능 조직들이 왕성하게 활동할 때 함께 성장했다. 그러나 이제 맨해튼에는 뉴욕 한인회만이 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커뮤니티의 기둥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인 사회의 대표성을 상징했던 한인회는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한인들이 밀집한 곳곳에 커뮤니티 센터를 세워, 한인 정체성의 중심이자 실질적인 삶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 결혼식부터 장례식까지, 한글과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각종 사회 서비스와 권익 신장 활동을 펼치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 2세대, 3세대들이 커뮤니티 센터를 ‘우리의 자산’으로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격변기 속에서 예기치 못한 유탄(流彈)을 맞을 수밖에 없다. 수많은 동포들이 추방당하고, 수많은 소규모 사업체가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 이로 인해 한인 커뮤니티의 골간(骨幹) 조직들이 사라지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이 위기의식을 가지고, 우리는 새로운 커뮤니티라는 씨앗을 파종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한인 커뮤니티는 이 격변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 모른다.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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