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인 칼럼> 성육신: 여기 함께 있음(Presence)

2024-10-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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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준식 목사/ 밀피타스 세화교회

드디어,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게 되었다.노벨문학상 작품을 원어로 읽게 된 것이 가장 기쁘다. 한강은 시인으로 먼저 데뷔하고, 다음에 소설가로 데뷔했다.한강 작품의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presence’(프레즌스)가 아닐까? 여기 함께 있음. 인간의 고통과 상처를 보듬으며, 거기에 그들과 함께 있음. 이것이 한강 작품의 특징이자, 그의 작품이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서는 방식이고,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고, 결국 노벨상을 품에 안긴 원동력일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가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를 쓴 적이 있다. ‘교회 밖 그리스도인’이라고 옮길 수 있는 용어다. 교회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사람을 일컽는 말이다. 책을 읽다 보면(특별히 문학책), 그런 경험을 종종한다. 이 작가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데, 마치 교회를 다니는 사람보다 더 그리스도인인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한강 작가가 딱 그렇다. 그의 작품에는 성육신의 감성이 흐른다. <채식주의자>는 고통 받는 여성과 함께 하는 작품이고, <소년이 온다>는 5.18 민주화항쟁을 겪으며 아픔을 당한 자들과 함께 하는 작품이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에서 아픔을 당한 자들과 함께 하는 작품이다. 즉, 역사를 초월해 있는 게 아니라, 역사 안으로 들어와 역사 속에서 고통 받는 자들과 함께 한 작품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꼭 기억해야 하는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다.우리는 어느새 이런 ‘역사’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가, 승천하신 것만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고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그렇지 않다. 그리스도 사건의 핵심은 성육신 사건이다. 성육신 사건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사건을 말한다.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임마누엘’이라고 부른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성육신 사건은 ‘presence’(프레즌스), 즉 ‘여기 함께 있음’의 사건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교리적인 사건으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성육신 사건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성육신 사건’(빌 2:1-11)에 대하여 진술하는 이유는 서로 평화롭게 잘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하는 말이다. 자기 일을 잘 돌보고, 다른 이들의 일을 잘 돌보아, 나 자신의 인생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풍성한 기쁨을 누리며 살게 만들어 주는 삶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성육신의 원리이다. 다른 말로, ‘presence’(프레즌스), ‘여기 함께 있음’이다.내가 나의 일을 가장 잘 돌볼 수 있는 상태는 presence이다. 다른 말로, mindfulness라고 할 수 있다. 마음과 육신이 하나가 된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이것을 정말 잘 하지 못한다. 이게 잘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염려한다. 염려란 마음과 몸이 따로 떨어져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니까, 우리는 염려하게 된다. 다른 사람을 잘 돌보는 것도 성육신의 원리가 절실히 필요하다. ‘presence’(프레즌스)이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음이다. 가장 고마운 사람이 누구인가. 나랑 함께 있어 주는 사람이다.슬픈 일이든, 기쁜 일이든, 그 자리 함께 있어 주는 것 자체가 기쁨을 두배로 만들어 주고, 슬픔을 반으로 줄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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