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문가 칼럼] 왜 나는 사기를 당하나?

2024-10-17 (목)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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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속임수에 당한 나이는 7살이었다. 집에 온 손님이 “옛다!” 하고 주신 천 원 짜리 지폐! 그 당시 꿈의 군것질이었던 세모 비닐 봉지에 든 싸구려 오렌지물을 사러 동네 골목길 끝에 있는 가게로 달려가는데 한 아저씨가 다가와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멀리 다녀오려면 힘들겠구나. 여기서 기다려라. 내가 사다 줄게.” 나는 선뜻 지폐를 건네고 이웃집 처마 밑에서 착한 아저씨를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저씨는 돌아오지 않았고 저녁 어스름이 되어서야 나를 찾으러 나온 오빠의 손을 잡고 터덜터덜 집으로 갔다. 아저씨가 돌아와서 내가 약속도 안 지키고 가버린 걸 알면 얼마나 실망하실지 한동안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어려서 세상을 몰랐다고? 아니다. 이후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여러 번 속임을 당했다. 곧 갚겠다며 눈물까지 내비친 사람의 말을 듣고 큰 돈을 빌려주었지만 그는 바로 연락을 끊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에 골프를 치러 갔다고 했다. 자기를 믿어달라며 잔고 없는 은행구좌에서 체크를 써주고 자취를 감춘 사람도 여럿 있다. 그때도 믿었었다. 어떤 사람은 일거리가 떨어져서 못 갚을 뿐이라며 세상을 한탄했다. 듣다 보니 마음이 아파져서 백방으로 다리를 놓아 알맞은 직장을 구해놓고 연락을 했더니 돌아오는 답변인 즉, 그 일은 자기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한해 미국에서 사람들이 온갖 종류의 사기로 잃은 돈은 1천억 달러, 이 가운데 특별히 60대 이상이 당한 사기 액수는 483억 달러(연방거래위원회 자료, 2023). 경찰을 대상으로 금융사기 수사법을 교육시키는 그린우드 수사관은 ‘노인은 가장 좋은 표적’이라고 단언한다. 노년층은 나이대별로 볼 때, 재정 능력이 가장 좋은 대신 요즘 더욱 활개를 치는 AI, 온라인 사기를 식별하는 능력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도대체 사기 당하는 사람은 뭘 잘못한 것일까? 소비자 심리를 연구하는 스크립스 컬리지의 스테이시 우드박사는 사기에 성공한 4가지 유형의 편지와 이메일 등을 집중 연구했다. 첫째, 사기범들은 진정성을 높이기 위해 친근한 이름, 코스트코, 매리엇 등의 브랜드나 사기 대상과 같은 지역 번호 등을 사용한다. 둘째, 동기 부여를 위해 ‘언제 까지’라고 압박하는 시한성을 삽입한다. 기타, 과거 당첨자라는 사람들의 사진 넣기, 법적 용어 사용하기 등도 있다. 연구팀은 시험적으로 사기 메일과 똑같은 메일을 써서 단체로 발송했는데 무려 48%의 사람들이 ‘연락을 해보고 싶다, 이번 것은 믿을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은퇴 재산 70만 달러를 전화 스캠에 고스란히 잃어버린 오하이오의 80세 피해자는 FBI를 통해 사기범 검거에 나섰지만 결국 해외도피 계좌는 추적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한 상태다. 자신이 사용하지 않은 아마존 주문, 홍콩의 가짜 ‘환불처리센터’에 자신의 개인정보를 제공했고, 심지어 돈을 찾고 싶으면 은행계좌를 동기화 하라는 주문에도 응했던 자신을 자책하고 있다.

사기 당하는 사람들은 약간의 의심을 하면서도 큰 보상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지우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함정이다.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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