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지원 법률 칼럼] 인종 혐오범죄와 민사소송

2024-10-04 (금) 정지원/상해사고 전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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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이라는 이유만으로 욕설과 폭행, 심지어는 살해당하는 억울한 일들이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인종 혐오범죄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안타까운 사실은 민사소송을 통한 적절한 배상금을 받기 힘들다는 점이다.

인종 혐오범죄는 말 그대로 ‘범죄’(crime)다. 따라서 가해자는 형사법 위반으로 형사법원(Criminal Court)에서 처벌을 받고 옥살이를 통해 죄 값을 치를 수 있다.
그렇다면 민사소송(civil lawsuit)은 어떨까?

말(speech)을 통한 인종 혐오 행위는 민사소송이 어렵다. 소송을 할 수는 있지만, 하더라도 배상을 받기가 어렵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왜냐하면 민사소송에 적용될 수 있는 정확한 ‘법’(cause of action)이 없기 때문이다.


민사소송에 있어 말을 통한 인종 행위와 가장 근접한 법은 명예훼손이라 할 수 있지만 명예훼손에서 승소하려면 내가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된다.

단, 지난 1964년 제정된 민권법에 따라 직장 상사 및 동료로부터 인종차별적 발언을 들었다면 회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이 가능하며 경찰이나 공무원이 인종차별적 발언이나 행위를 한다면 정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인종 혐오로 폭행(battery)을 당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지만 현실은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인종 혐오 가해자들은 재산이 없는 노숙자들이다.

물론 가해 노숙자는 형사법원에서 인종 혐오범죄를 비롯한 여러 가지 혐의로 기소돼 다시 감옥으로 돌아갈 것이다. 또한 피해 여성은 가해자를 상대로 자신이 입은 육체적 피해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재판시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배상금 평결을 받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수백만 달러는커녕, 수십 달러로 없을 노숙자로부터 어떻게 돈을 받아낼 수 있겠는가? 최근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인종 혐오범죄의 가해자들 중 거의 대부분이 교육 및 경제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가해자로부터 폭행을 당한 뒤 민사소송을 통해 적절한 배상금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된다.

그렇다면 여성이 무자비하게 구타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가만히 있었던 사람들을 상대로는 민사소송이 가능할까?
뉴욕과 뉴저지를 비롯한 미국의 거의 모든 주에서는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조해야 된다는 의무(Duty to Rescue)를 적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들의 행위가 비인간적일지라도 법적으로 책임이 없다.

단, 의무적으로 구조 책임이 주어지는 경우는 ■위험한 상황을 피고가 만들었거나 ■피고와 원고의 관계상 구조 의무가 성립될 때(예: 수영장 및 해변가 안전요원, 부모-자녀, 교사-학생 등) 등 뿐이다.

<정지원/상해사고 전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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