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태문의 팝송산책

2024-09-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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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랭 들롱도 떠나고…

정태문의 팝송산책
알랭 들롱. 그는 60년대와 70년대에 영화를 즐기던 팬들에겐 마지막 남은 한 장의 카드였다 . 알랭 드롱. 그는 세기의 연인이며 미국을 제외한 전 대륙에서 독보적인 팬들을 확보했다. 1958년 데뷔이래 수많은 힛트 작품에 출연한 그는 한국에선 성별에 구애 없이 모든 계층에서 팬들을 확보했다. 그의 첫번째 매력은 그리스나 로마 신화 시대의 조각 보다도 더 아름다운 용모이다. 어떤 조각가도 그의 모습 보다 더 미적 감각을 가진 형태를 재현하기 어려울 같은 완전체 그 자체였다. 두번째 매력은 그의 눈이다. 아름다운면서도 차가운 그의 눈은 상대방의 방어 능력을 상실케 할 만큼 마성적이고 표현하기 어려운 어두운 면을 내표하고있다. 세번째는 그의 목소리이다. 프랑스 언어가 가진 부드러움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냉철한 음성은 특히 여성팬들에게 어필하고있다

필자는 영화 제목, 스토리 불문하고 그들이 나오면 무조건 보는 두 명의 배우가 있다. 그들은 알랭 들롱과 찰스 브론슨이다. 하나는 유럽에서 활동하고 또 하나는 미국에서 기반으로 활동했다. 허나 그 둘은 닮은 공통점이 거의 없으며 찰스 브론슨은 과묵한 연기에 근육질 체격 그리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으로 스크린을 장악했으며 미국 출신이라 할리우드 기반으로 영화에 출연했으며 당연히 할리우드 식의 권선징악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그는 항상 악을 소탕하는 쾌남아 역을 맡아 팬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빗속의 방문객’ ‘데드 위쉬 시리즈’, ‘10 투 미드 나잇’ 등이다.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항상 영화 엔딩이 관객의 원하는 방식인 악을 통괘하게 소탕한 후 끝나기 때문에 영화관에서 나올 때 기분 좋은 미소를 띄우게 해준다.

허나 알랭 들롱의 영화 속 배역은 사뭇 달랐다. 데뷔 초기에는 아름다운 용모를 이용한 로맨스 영화에 등장했지만 1960년 작품 ‘태양은 가득히’ 이후에는 유럽 스타일의 느와르 풍의 영화에 치중했다. 대표적인 작품은 ‘한밤의 암살자 ’, ‘부메랑’, ‘시실리안’, ‘암흑가의 두사람’, ‘볼사리노’, ‘고독한 추적’, ‘범죄자“, ’빅 건 ‘, ’지하실의 멜로디 ‘ ‘원스 어 씨프’등이다. 영화속 분위기는 침침하고 우울하게 진행되며 마지막은 늘 죽음으로 끝을 마쳐 영화관에 나올 때 느낌은 무언가 찝찝하며 아쉬움을 가지게한다. 한가지 덧 붙인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악역인 그를 나도 모르게 동정하며 해피 엔딩으로 끝 마치기를 바라지만 그 끝은 그렇지 못했다. 팬들은 이 부분이 매우 아쉬운 점이다. 그리고 의문을 가진다. 왜 살리면 되지 않을까? 그럼 이 문제를 집고 넘어가보자. 프랑스 영화 관계자는 영화 마지막 장면이 관객이 예상데로 끝나면 안된다는 것이 거의 전통처럼 굳어 있어 이 방정식을 채택하다보니 알랭 들롱은 범죄 영화에서는 거의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

알랭 들롱은 애당초 배우를 전혀 꿈꾸지 않았다. 그의 재능을 처음 발견한 것은 프랑스인이 아닌 미국의 영화 제작자였다. 1956년 군복무를 마친 후 파리에서 짐꾼, 웨이터, 스토어 키퍼 등 온갖 잡일을 했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배우 브리지트 오버와 함께 칸 영화제에 들러리로 따라 갔는데 그곳에서 미국 영화 제작자 ‘데이비드 오 셀즈닉’에게 발탁되어 영화 배우직을 제의 받았다. 조건은 단 하나 영어를 배우는 것이 계약 조건이었다. 데이비드 오 셀즈닉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은 제작자이며 불멸의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를 비롯하여 그레고리 펙이 주연한 ‘백주의 결투’, 로렌스 올리비에오와 조앤 폰테인이 열연한 ’레베카‘, 록 허드슨이 등장한 ’무기여 잘 있거라‘ 등 국제적으로 유명한 영화와 ‘킹 콩’ ‘톰 소이어의 모험’ 등 청소년들을 위한 영화들을 제작한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이다. 그는 앞뒤를 재볼것 없이 계약서에 싸인하고 파리로 돌아왔다. 알랭 들롱이 미국의 거물 제작자와 계약을 맺어다는 소문이 파리 영화계에 퍼지자 일순간에 그는 가장 핫한 배우 지망생으로 떠올랐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던 그를 여러 영화 관계자들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접촉한 인물은 이브 알레그레 영화 감독이었다. 한눈에 그의 상품성과 장래성을 간파한 그는 알랭 들롱에게 조언을 했다. “ 처음부터 미국에 가서 활동하는것 보다 프랑스에서 경력을 쌍은 후 미국으로 가는 것이 좋다.” 이 조언을 받아들인 앨랭 들롱은 프랑스에서 영화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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