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고] 임윤찬, 두다멜, 베토벤의 ‘황제’

2024-09-05 (목) 강미자 서울대 성악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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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앳된 20살의 임윤찬은 정확히 1년전 할리웃보울 야외 연주장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모든 청중을 매혹시킨 기억이 채 가시가도 전에 다시 할리웃보울에 찾아왔다. 세계 최고의 연주자들조차 1년 만에 다시 이곳에 초청 받는 경우는 흔치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오랫동안 최고 자리를 굳히고 있는 두다멜 지휘자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크고 운치 있는 야외음악당 할리웃보울에서 그 둘의 협주를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이곳 LA에 살고 있는 행운이 아니겠는가?

1년 만에 가히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우뚝 서 돌아온 임윤찬을 어떤 환대로 맞아야 하나? 1년 만에 이토록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 올려놓은 예술가가 또 있었는가? 지난 8월29일 밤 설레는 마음으로 청중들 틈에 숨을 죽이며 감상했다.

사실 나는 1988년 ‘88올림픽 기념 축하음악회’를 LA 뮤직센터(디즈니홀 전신)에서 피아니스트 한동일과 함께 공연한 바 있다. 그때 한동일은 베토벤 ‘황제’를 연주했고 나는 푸치니 오페라 아리아 중 한 곡과 한국 가곡을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베토벤 ‘황제’를 접하며 그 곡의 웅장함과 경쾌한 기교, 특히 2악장의 감미로움에 감탄한 기억이 남아 있다. 왜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가장 연주 하고 싶어 하는 피아노 협주곡이 ‘황제’인지를 알게 됐다. 그렇기에 임윤찬이 연주하는 ‘황제’를 얼마나 기대하며 기다렸던가.


이곡의 특징은 1악장 시작부터 오케스트라와 협연 없이 단독으로 치고 나오는, 다른 협주곡에선 볼 수 없는 유일한 형식이 특징이다. 첫 악장 알레그로(Allegro) 카덴짜를 임윤찬은 활기차고 화려한 기교로 마치 옥구슬이 굴러가듯 일말의 빈틈없이 완벽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감탄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연습의 노력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너무나 자신감 넘치는 테크닉 처리! 경쾌함과 기교와 웅장함의 극치를 느끼게 했다.

2악장 아다지오(Adagio)는 극도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로 마치 쇼팽 곡을 연상케 하는 슬픔으로 모든 관중들의 가슴을 뭉클케 했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특히 2악장을 사랑하기에 임윤찬의 표정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커다란 야외 스크린에 비치는 얼굴 표정은 건반 위 손가락의 잔잔한 놀림과 함께 슬픔에 빠져 있는 듯 했다. 적당히 갸름한 얼굴에 짙은 눈썹, 가끔 위를 쳐다보는 사색에 잠긴 눈매, 옆선이 멋있게 보이는 우뚝한 콧대, 숱 많고 곱슬기가 있는 눈을 덮을만큼 긴 앞머리 이번엔 반듯한 앞가르마마저 어울려 보이는 그의 외모는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을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곡의 특징은 슬픈 2악장에서 자연스레 3악장 론도 알레그로(Rondo Allegro)로 선율이 넘어간다는 점이다. 슬픈 2악장에서 자연스레 3악장 론도 알레그로로 선율이 이어 받아 폭발함을 제시하며 가장 밝고 활발한 정서를 느끼게 했다.

임윤찬의 연주는 이 모든 ‘황제’의 장점을 가장 잘 표현해줬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관중들의 넋을 사로잡은 임윤찬은 베토벤의 ‘황제’를 누구보다 완벽하게 연주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우레 같은 2만 명의 박수 소리에 기대해 본 앵콜곡을 들을 수 있었다. 가을 분위기다운 바흐의 시칠리아노 곡으로 또 한 번 가슴을 적시고 돌아왔다.

<강미자 서울대 성악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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