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문가 칼럼] 침대에서 주무시는 개님

2024-09-04 (수)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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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근무하던 미국 상담기관에서는 직원들을 위해 한 달에 한번 ‘애완동물의 날’을 지켰다. 자기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강아지 등을 오피스에 데리고 와서, 일하는 동안 책상 밑에 두기도 하고 중간 중간 런치 룸에서 함께 놀아주었다. 케이지도 없이 거북이나 도마뱀을 가져오는 동료들을 멀리 피해 다녔지만, 굳이 찾아가서 그런 애들의 징그러운 등짝을 쓰다듬는 사람도 많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개 파다. 개만 빼고 다리가 4개 이상인 동물은 다 무섭다. 시시각각 슬픔과 기쁨과 때론 아쉬움마저…. 감정이 풍부하게 담긴 그들의 두 눈을 마주할 때 어찌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가 있단 말인가. 종일 일터로 뿔뿔이 헤어졌던 가족들이 저녁 식탁에 모여 앉아 하하호호 하고 있다가 문득 ‘얘가 어딜 갔지?’ 하고 둘러보면 혼자 문 열고 나간 마당 한쪽, 서편에 지는 붉은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앉아있는 조그만 뒷모습은 늘 애틋하다.

옆집 미국인 부부도 개를 키운다. 우리 집 귀염둥이는 본래 사람인데 우리 좋으라고 그냥 강아지 모양으로 태어나 준거다. 진짜다. 옆집 개는 핏불테리어다. 작은 눈에 표정도 사납고 어깨는 쌈꾼처럼 벌어졌다. 주인 말은 안 듣기로 작정을 한 듯 고집불통인데 어쩌자고 내가 자기를 예뻐한다고 믿는다. 서로 산책하다가 마주치면 벌렁 누워 자기 배를 쓰다듬으라고 내 몸에 막 기댄다. 옆집 아줌마가 말리기는커녕 애정 어린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이 녀석, 정말 이쁘지 않니?”


그들이 여행으로 집을 비울 땐 템퍼페딕 매트리스에 개인 수영장이 제공되는 고급 개 호텔에 투숙시킨다. 개가 아니고 개님이시다. 집에 돌아오면 그동안 쌓인 개님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개 지압사를 불러 전신 마사지를 시킨다. 주 2회 전용 트레이너에게 행동 교정 과외수업도 받는다. 우리 집이랑은 따로 펜스가 없고 키 큰 나무들이 담장을 대신하므로 종종 트레이너가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오우! 굿 보이!”라든가, “스마트! 베리 굿!” 그 고집퉁이 핏불이 칭찬을 듣는다고? 살펴보니 트레이너가 있을 때만 잘하고 수업이 끝나고 나면 주인 부부는 개님에게 봉이다. 스마트 하긴 하네, 두 얼굴의 개님.

밤이 되면 우리 집 개님도 자기 집을 놔두고 우리 침대에서 주무신다. 첨엔 좀 눈치를 보더니 어느 틈에 침대 한가운데가 자기 자리다. 남편과 나는 그분께 자리를 내드리고 각자 양옆 침대 가장자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잔다. 옆집에 물어보니 자기네도 그러는데 개님 깨실까봐 침대에서는 절대 TV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개는 천재다.’ 듀크대 개 인지과학자 브라이언 헤어박사의 책 제목이다. 인간이 늑대를 가축화해 가정견을 탄생시켰다는 동물학계 통설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영리하고 천재적인 개가 공격성을 띠는 것보다 인간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 생존에 이롭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화를 거듭해 스스로 개가 됐다는 것. 개님은정말 천재 아니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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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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