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요동치는 주식시장, 페르세우스 유성우(Perseid meteor shower), 중동전쟁,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기습 공격, 민주당 전당대회 등등. 2024년 8월은 한여름 매미 떼처럼 뉴스가 넘쳐났다. 그 많은 소식 중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너무 덥다”였다. 올해가 2000년 버지니아주에 이사온 후 가장 덥고 가문 여름이지 싶다. 이곳뿐 아니라 아침마다 한국에 계신 엄마께 화상 전화를 드리면 너무 더우니 머리가 아프다고 하소연하셨다. “오늘 또 기록이란다. 어제는 36도였는데 오늘은 37도다.” 말복을 지날 즈음이었다.
“에어컨을 좀 켜고 지내시지 그래요?” 수십 년 된 것이지만 아직 작동한다고 거실 한 모퉁이에 세워둔 구식 에어컨이 있다. 내 말에 엄마는 질색하며 답하셨다. “저 커다란 걸? 큰 평수에 쓰던 거라 틀면 전기세도 많이 나오고... 네 아버지 계실 땐 그래도 간혹 여름에 켜곤 했는데, 이젠 혼자 살면서 저런 걸 쓰기는 너무 미안하지…” 미안하다는 엄마의 말이 송곳처럼 내 양심을 쿡 찔렀다. 사무실이나 쇼핑센터 같은 곳은 얼마나 에어컨을 세게 트는지 오히려 추워서 재킷을 입어야 할 지경인 미국. 여름내 일정 온도에 맞춰놓고 에어컨을 가동하는 커다란 집에서, 그런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나.
불과 한 세기 전에 도입된 에어컨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바꿔놓았는지. 미국의 엔지니어 윌리스 캐리어(Willis Carrier)가 1902년 뉴욕 브루클린의 한 인쇄 공장에서 공기의 습도를 조절해 인쇄물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었고, 이것이 발전해 실내 온도까지 제어할 수 있게 되면서 에어컨의 초기 형태가 탄생했다. 1920~30년대 극장과 백화점에 에어컨이 도입되고, 1950년대 이후 가정용 에어컨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에어컨은 미국 남부와 같은 더운 지역에서의 산업 성장과 인구 증가를 가능하게 했고, 주거 패턴과 건축 디자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자연 환기를 고려한 건축 디자인이 이루어졌지만, 에어컨이 보급되면서 밀폐된 공간을 유지하고 냉방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디자인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 지역에 대단지의 주거단지가 들어서고, 곳곳에 전면 유리 고층빌딩들이 지어졌다. 유리 고층빌딩은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꼽히는데, 매해 수백만 마리의 새가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다. 이 중 30%가 멸종 위기종이다. 또한, 유리 건물은 열 차단이 잘되지 않아 냉난방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 온실가스 배출을 증가할 뿐 아니라, 유리 외벽은 태양광을 반사해 주변 환경에 열섬 현상을 일으켜 도시의 온도를 상승시킨다. 아이러니하게도, 1947~52년에 건축된 첫 전면 유리 고층빌딩이 환경보호에 앞장서야 할 유엔의 본사 건물이다. 2013년 영국 유명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라가 설계한 전면 통유리로 중간이 오목한 모양으로 지어진 ‘워키토키’ 빌딩은 2015년 유리 외벽에서 반사되는 강렬한 태양광 때문에 주변에 주차돼 있던 자동차가 녹아내리는 일까지 발생했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다. 타이슨스 코너에 새로 들어선 캐피탈원 건물은 높이가 140미터가 넘어, 워싱턴 모뉴먼트에 이어 이 지역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축물이다. 전면 유리의 이 거대한 건축물이 들어선 후, DC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해 돌아오며 운전할 때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가 반사되어 앞이 보이지 않아 고생하곤 했다. 특히 여름이면 늦은 오후의 강렬한 햇살로 운전경로를 바꾸어야 했다. 그때마다 카운티에서 어떻게 이런 건축물 허가를 내주었는지 불평하곤 했다.
“불평이 있으면 불평 대신 무언가를 해라(Do something!)” 민주당 전당대회 둘째 날 연사로 나온 미셸 오바마가 외쳤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어머니가 했던 말을 되새기며 강한 목소리로 전하는 그녀의 메시지에 불현듯 환경을 파괴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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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