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제우주정거장의 우주비행사들

2024-08-21 (수)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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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상공 254마일(400km)에 떠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은 우주비행사들이 머물며 다양한 과학실험을 하고 인간의 우주 장기체류를 연습해보는 전초기지다. 시속 1만7,500마일로 돌면서 하루에 지구를 16회(90분에 한번) 공전하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매일 8회나 목격할 수 있다.

그 우주정거장에 지금 두 비행사가 발이 묶여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배리 부치 윌모어(61)와 수니타 윌리엄스(58)는 지난 6월초 보잉사가 개발한 우주선 ‘스타라이너’를 타고 ISS로 올라갔다. 신형 우주선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한 8일 일정의 시험비행이었는데, 우주정거장과 도킹하는 과정에서 고장이 발견되어 귀환이 연기되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당초 사소한 결함으로 보고 수리를 시도하며 귀환날짜를 여러 번 연기했지만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자 아예 무기한 연기했다. 그리고 다시 ‘스타라이너’를 타고 돌아오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고 결론내린 나사는 지난 8월7일 부치와 수니(나사에서 부르는 애칭)가 다른 우주선인 스페이스X의 ‘크루 드래건’을 타고 내년 2월 지구로 귀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오는 9월 발사되는 ‘크루 드래건’은 원래 4명이 탑승할 예정이었으나 2명만 태우고 ISS로 떠난다. 부치와 수니는 이들과 합류하여 6개월간 함께 임무를 수행한 뒤 내년 2월에 다같이 지구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8일 출장 갔다가 일정과 업무가 바뀌면서 8개월로 늘어난 형국이다. 하지만 평생 우주여행을 꿈꾸며 커리어를 쌓아온 우주비행사들에게 이런 비상사태는 ‘보너스’와 같다. 마치 파리 출장이 반년이나 연장된 행운에 비유해도 좋을 것이다. 더구나 부치와 수니는 전에도 우주정거장에서 장기체류한 경력이 있는 베테런들인 만큼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이다. 또 현재 ISS에는 우주비행사들이 4개월 이상 생활할 수 있는 분량의 식량과 기타 소모품이 비축돼있다고 NASA는 밝혔다.

이런 돌발사태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2022년 12월 미국인 우주비행사 프랭크 루비오가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ISS를 방문했을 때 라디에이터에서 누수가 발생해 냉각수가 우주로 유실된 적이 있다. 손상된 우주선은 지구 재진입시 치명적으로 뜨거워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루비오는 러시아가 대체 우주선을 보낼 때까지 발이 묶였다. 6개월 체류 예정이던 그는 무려 371일을 ISS에서 버텼고, 미국 우주비행사로서 최장 체류기록을 세웠다.

2003년에는 3명의 우주비행사가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해 2월1일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지구 귀환 도중 붕괴되어 7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때 ISS에 있던 우주인들은 동료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동시에 다음 달 그들을 데리러오기로 한 셔틀 아틀란티스호가 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즉시 물과 식량과 생필품을 알뜰하게 나눴고 가능한 한 오래 사용했다. 사실은 충분한 보급품이 있었지만 사태가 얼마나 오래 갈지 몰랐기 때문에 최대한 절약한 것이다. 이들은 예정보다 3개월 늦게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돌아왔다.

국제우주정거장은 어떤 곳이며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떠할까?

인류가 개발한 최초의 우주정거장은 1971년 소련이 띄워 올린 살류트였다. 이어 미국이 1973년 스카이랩을 쏘아 올렸고, 1986년 소련의 2세대 우주정거장 미르가 건설됐다. 그리고 소련이 붕괴하자 우주개발 협력의 시대가 열리면서 1998년 지금의 국제우주정거장이 탄생했다. ISS는 미국, 유럽, 러시아, 일본, 캐나다 등 16개국이 개발에 참여했고, 각자 역할이 다른 여러개의 모듈을 하나씩 쏘아 올려 우주에서 조립한 집합체로 기능하고 있다.

나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우주인들이 거주하는 모듈은 축구장만한 크기로, 지상의 6베드룸 하우스보다 널찍한 규모이며 쾌적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있다. 실내는 지상처럼 질소와 산소가 4대 1로 혼합된 공기로 채워져 있으며 취침시설, 화장실, 샤워장 등 기본시설은 물론 건강유지를 위한 짐과 운동기구도 마련돼 있다.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는 골밀도와 근육양이 빨리 소실되므로 운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주인들은 낮은 중력을 상쇄하기 위해 무거운 신발을 신거나 손잡이를 잡고 걸어 다닌다. 또 일상에 필요한 다양한 물건이 떠돌아다니지 않도록 벽에 고정된 벨크로 찍찍이에 붙여놓고 생활한다. 음식은 한정된 공간에 오래 저장할 수 있도록 부피와 무게가 작고 개봉하기 쉬운 통조림과 건조식품이 대부분이며, 부스러기가 날리지 않도록 진공파우치에 담긴 것을 포크나 스푼으로 떠먹거나 빨대로 빨아먹는다.


옷은 더러워질 때까지 입다가 걸레로 사용한 다음 버린다. 다행히 우주선 내부에는 먼지가 많지 않아 빨리 더러워지지 않는다. 잠은 칸막이 있는 개인 수면공간에서 잔다. 침낭과 함께 벨트가 있어서 수면 중에 몸이 떠다니지 않도록 붙들어 맨 채 잠을 잔다.

수니와 부치는 현재 우주정거장에서 ‘탐험 71’(Expedition 71) 임무를 수행중인 7명의 우주인에게 더부살이하고 있다. (‘탐험 71’은 신경퇴행성질환과 치료법, 우주식물학, 생명유지시스템 등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로 9월에 종료된다.) 침실은 이들 7명이 선점한 상태여서 부치와 수니는 연구실 내에 급조한 임시침대와 슬리핑백에서 수면을 취하고 있다.

뜻하지 않게 일정이 연장된 두 사람이 편안한 환경에서 즐겁게 임무를 마치고 내년 2월 무사귀환하기를 바란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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