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매미가 있는 여름

2024-07-26 (금) 송윤정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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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날마다 짙어간다. 여름 햇볕이 강해질수록 숲에서 울어대는 매미 소리도 더 요란해진다. 숲과 맞닿은 집인지라, 창을 열면 매미 소리가 교향곡처럼 들려온다. “맴맴맴맴” “쐐~~애애애애애~” “쯔그르르르 딕! 쯔그르르르 지글지글지글지글” “기이~~~, 끼르르르르르르르” “쓰-름 쓰-름”

여름엔 모든 것이 힘차다. 쑥쑥 자라는 풀도 그렇고 장대비도 그렇고 매미 소리도 그렇다. 하지만 저 매미 소리가 수 년의 긴 시간 땅속에서 나무뿌리의 수액을 먹고 자라 땅에 올라와 2주에서 6주라는 짧은 생애 동안 번식을 위해 짝을 찾는 절규라니, 한편으론 애절하게 들리기도 하다. “절규라고? 번식이라는 생존의 유일하고도 명확한 목적을 위해 기쁨과 전율로 온 힘을 모아 소리 내고 있는 걸. 쐐~~애애애애애~” 매미 중에서 제일 큰 소리를 낸다는 말매미떼가 힘찬 소리로 내게 대꾸하는 듯하다.

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해 애쓰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매미나 사람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체조, 축구, 수영 등등 각기 다른 종목의 스포츠에 전신의 힘을 다해 겨루는 모습이 터질 듯 울리는 제각각의 매미 소리 같다. 평소 스포츠에 관심이 없어 스포츠 중계를 잘 보지 않는 나지만, 올림픽은 기다려진다. 특히, 아이들을 향해 무차별로 폭탄을 날리고 총을 쏘아대는 전쟁의 소식이 이어지는 요즘, 파리에서 열릴 하계 올림픽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동의 이야기들을 전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제시 오웬스(Jesse Owens)와 독일의 루츠 롱(Luz Long)의 이야기처럼.


아돌프 히틀러의 독재 정권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통해 독일의 우수성과 금발의 백인인 아리아 인종의 우월성을 선전하려 했다. 그러나, 미국의 흑인 육상 선수 제시 오웬스가 금메달 네 개를 따면서 나치 독일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제시 오웬스는 예선에서 탈락할 뻔 했으나 독일의 육상선수 루츠 롱의 조언으로 그런 역사적인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오웬스가 두 번의 예선 도약에서 실패했을 때, 롱은 도약판에서 조금 더 뒤에서 시작하라는 조언을 주었고 이 조언을 따라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한 인터뷰에서 오웬스는 “히틀러 앞에서 나와 친구가 된 그의 용기는 대단했다”고 말했다.

롱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전투에서 사망했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롱에게 사후에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 메달을 수여했다. 쿠베르탱 메달은 1894년 국제올림픽위원회를 조직해 1896년 제1회 현대 올림픽을 개최한 피에르 드 쿠베르탱을 기리며 올림픽 정신을 구현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준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이제까지 총 열일곱 명이 수상해 금메달보다 훨씬 따기 힘들다.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에서도 이 상을 탄 선수가 있다. 캐나다의 요트 선수 래리 르미외(Larry Lemieux)는 은메달을 목전에 두고 있었는데, 높은 바람을 맞서 싸우던 싱가포르 팀의 경쟁자들이 전복 사고를 당한 것을 보고 물에 뛰어 들었다. 물에서 두 사람을 구조하고 순찰 보트가 그들을 해안으로 데려갈 수 있도록 기다린 후, 그는 경주에 다시 참여해 22위로 마쳤다. 메달이 아닌 생명을 택한 그의 행동을 인정받아 쿠베르탱 메달을 수여받았다.

곧 파리에서 올림픽 개막식이 시작될 터이다. 낮의 열기가 들어와 창을 닫는다.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요란하던 소리가 멈추자, “매미들은 노래를 멈추고/ 날지도 않았다./ 유달리 무덥고 긴 여름이었다.”로 끝나는 김광규 시인의 「매미가 없던 여름」이 떠오른다. 노래하던 매미가 날아가다 거미줄에 걸려 “일곱 해 동안 다듬어온/ 매미의 아름다운 목청은/ 겨우 이레 만에/ 거미밥이 되고 말았다.”는 슬픈 시구가 현실이 되지 않기를. 숲속 매미들에게도, 올림픽에 출전한 모든 선수에게도, 전쟁의 포화 속에 하루하루를 견디어내는 이들에게도, 온 힘을 모아 생존과 생의 목적을 이루어 낼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린다.

<송윤정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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