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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때리고 다녀온 여행기

2024-07-12 (금)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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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때리고 다녀온 여행기
약 2주간 일정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사람마다 여행하는 습관이 다르고, 혹자는 이것저것 관찰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지만 여행은 대체로 나에게는 멍때리는 시간이다. 즉 2주간 멍때리는 시간을 가졌을 뿐 여행을 다녀온 소감같은 것을 쓸 의도는 없다. 다만 여행이란 평소의 잡념이나 이것 저것 가면을 던져버리고 평소 근거리에서는 관찰할 수 없었던 자신의 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이 사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닌 것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평소에 무관심했던 것이 더욱 진지하게 다가 오기도 한다.

짹, 짹,.. 지지배배.. 새 소리에 눈을 떠보니 새벽 4시반. 한 여름철이어서인지 어느 덧 동쪽 하늘이 뿌옇게 물들기 시작한다. 여행 지역을 계산해 보니 약 4천마일. 갈 수 있을까… 혹시 아프기라도 한다면…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다행한 것은 지금이 여름철이어서 낮시간이 길다는 것이었다. 저녁 5시부터 달리기 시작한다해도 얼추 2백 마일 이상을 더 달릴 수 있다는 것이 한 여름의 날씨인 것이다. 천천히 쉬엄쉬엄 간다고 해도 목표한 4천마일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버너에 물을 끓여 컵라면을 먹으려 하는데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습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미숫가루를 물에 타서 후루룩 마셨다. 새벽 공기 속에 달리는 드라이브의 상쾌함은 아마도 도로에 차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자연 속의 오직 나… 끝없이 펼쳐지는 염전(Salt Lake)은 정말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자연의 신비함이라고나할까, 기괴함이라고나할까… 염전이 끝나는 곳에 다다르니 아담하면서도 번화한Salt Lake City가 눈앞에 들어왔다. 오클랜드 시내보다는 조금 크고 샌프란시스코의 절반 크기에 해당하는 도시. 왠지 끌어당기는 유혹을 물리치고 곧바로 옐로스톤으로 향했다. 유럽 마을같은 아름다운 골짜기들을 지나 잭슨이라는 곳에 도착하니 이곳이 바로 옐로스톤의 전진기지… 모텔들과 식당… 선물가게들이 즐비한 잭슨을 지나니 그랜드 티톤의 거대한 산봉우리들이 우리를 반긴다. 높이 4천미터. 마치 스위스, 히말라야의 산들을 연상시키는 그랜드 티톤 내셔널파크의 아름다움에 압도되면서 공원에 입성하니 까마귀들이 우리를 반긴다. 레스트 지역에서 잠깐 쉬면서 요기를 하기 위해 차 트렁크를 열어놓은 사이 까마귀 손님이 라면 한봉지를 날쌔게 채간다.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닌듯 날랜 동작에 헛웃음을 치는데 이를 바라보는 여행객들도 좋다고 박수를 친다.

“까마귀가 너네 음식 훔쳐갔냐?”
까마귀에게 한방 먹은 사이 갑자기 하늘이 깜깜해 지며 소나기가 쏟아진다. 4천미터의 거대한 산봉우리가 워낙 높기 때문에 그랜드 티톤의 앞쪽과 뒤쪽의 날씨도 천양지차다. 구름이 걸려 있는 뒤쪽으로 왔기 때문에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이다. 지나가는 소나기였지만 왠지 티톤이 우리를 반기는 것만 같아 즐거웠고 앞쪽을 지나 올땐 평소에 구름으로 가려있던 산봉우리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내쳐주어 다음에 올 때에는 몇일 묵어가고 싶은 마음까지 더해지는 것이었다.

가다가 길을 잃기도 하고 네비게이션이 작동하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단 두가지였다. 늘 조급하고, 항상 보상받으려 하는 이기적인 스스로의 모습… 그리고 삼킬 듯 버티고 서 있는 산들의 위용이다. 여유를 찾으려고 여행을 떠났다가 오히려 초초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는 자신… 그리고 아무 것도 애쓰지도 않는데 저처럼 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자연 속의 큰 바위 얼굴들이다. 자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애쓰지도 않는데 하루하루를 발버둥치며 살아온 나는 왜 아직까지 아무 것도 내동댕이 치지 못하고 이처럼 발버둥치고 있는 것인지… 멍때리기 여행 속에서 느낀 또 하나는 자연은 착하다는 것이다. 자연 속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대체로 순박하다. 광활한 미 서부를 달리면서 만나는 사람 그 누구 하나 친절하지 않은 사람은 보지 못했다. 도시의 인심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대자연… 가기만 했지 미처 다 보지 못한 옐로스톤, 자이언 캐년, 그랜드 캐년, 새도나… 의 아름다움, 티톤 산맥의 위용과 까마귀의 추억을 안겨준 이번 여행은 아마도 한참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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