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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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보루

2024-07-07 (일) 송윤정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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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민주주의는 목숨이 경각(頃刻)에 달려있다. 민주주의를 상징하던, 이 나라만은 지켜내리라고 믿었던 미국. 20세기,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많은 국가의 독재정권 탄압을 피해 정의와 자유를 찾아 이민자들은 미국으로 향했다. 21세기에 이르러서도 법과 질서가 무너진 남미로부터, 독재화된 중국에서 탈출한 중국인 등등이 같은 이유로 미국으로 향한다. 2024년 7월 1일, 그런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대통령이 직무 수행 중에 한 공식적인 행위에 대한 형사 기소로부터 광범위한 면제권을 가지고 있다고 판결했다. 6대 3 의결로 법 위에 군림할 수 있는 면제권을 부여한 이 결정에 대해 독재의 길을 열어주었다고 평한다.

판결이 뉴스에 나온 바로 전날, 나는 며칠간 넷플릭스에서 <돌풍>이라는 한국 드라마를 봤다. 독재에 맞서 싸웠던 소위 운동권이었던 이들이 정권을 잡은 후 부정한 부를 취하고 자신들의 비리를 감싸는 현실을 흥미진진하게 그렸다. 부패한 권력의 상징으로 경제 부총리 정수진 역을 맡은 김희애와 한 때는 동지였으나 정의를 구현하고자 투쟁해 나가는 국무총리 김동호 역을 맡은 설경구의 연기도 일품이지만, 부패한 세력이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는지 일반인들의 눈엔 보이지 않는 장막 뒤의 모습을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 현실을 잘 조명한다. 예를 들어, 김동호가 대통령이 된 후 반대 세력이 탄핵안을 통과시키고 이를 무효화하기위해 헌법재판소(헌재)에 상정한 후 양쪽 세력은 아홉 명의 헌재 판사를 자신의 편에 줄 세우기 위해 회유와 협박으로 그 판결을 움직이려 한다.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로 여겨지던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어떻게 무너져왔는지 그 드라마를 보며 유추할 수 있다. 트럼프는 재임 중 약 300명의 연방 판사를 임명했고 대법원 판사 3명을 임명했다. 대법원을 ‘보수화'라는 명목으로 줄 세우기에 성공한 셈이다. 종종 대법원 판사들이 뇌물성 돈이나 선물을 받고 그와 관련된 사건에 버젓이 판결한 사례들이 보도돼 왔다. 이들 중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최근 6월 24일에도 이런 도덕 불감성의 대법관들은 주 정부 및 지방 관리자들의 뇌물수수를 정당화하는 판결을 6대 3으로 내렸다. 지역 트럭 딜러쉽에 부당 계약을 유도한 후 사례로 1만 3천 달러를 받아 공공 부패와 뇌물 혐의로 기소된 인디애나주 포티지의 전 시장인 제임스 스나이더(James Snyder)에게 무죄를 선포한 것이다. 그가 받은 돈은 계약이 성립된 후 선물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뇌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돌풍> 드라마 속에서 김동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며 “죄지은 자가 부끄러워할 줄 아는 세상을 원한다"고 외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죄를 짓고 법적으로 판결까지 받은 후에도 부끄러움은커녕 더욱 목청 높여 당당히 거짓말을 하는 이들이 판을 친다. 드라마 속에서 “거짓을 이기는 건 진실이 아니야. 더 큰 거짓말이지.”라는 대사는 반복된다. 현실 속에서처럼. “양심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고통을 겪는다. 그것이 그의 벌이다 -- 감옥과 마찬가지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양심이 사라진 사회에선 적용되지 않는다. 진실을 찾을 수 없는 사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트럼프가 2021년 1월 6일의 행동을 통해 선거를 뒤집으려 한 것에 대해 면제권을 가지고 있는지는 명시하지 않은 채, “공식적인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지 여부는 하급 법원에서 결정하라고 다시 하급법원으로 보내졌다. 하급법원의 이 판결은 아마도 트럼프의 재판을 2024년 선거 이후로 연기될 것으로 예상되고, 결국은 이번 사건의 재판이 유권자들의 손에 쥐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트럼프가 선거에서 승리해 백악관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는 법무부에 자신에 대한 모든 사건을 취하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뉴욕에서 사업 기록을 위조한 34개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받았었다. 대법원 면책판결 후 원래 7월 11일에 예정된 판결 선고가 9월로 연기되었고, 그의 변호인은 대법원 판결에 힘입어 면책특권을 다시 주장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고 그런 국민에게 권력이 있다고 믿는 정치 체제이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는 당신과 나와 같은 보통시민에게 남겨졌다.
(2024.7)

<송윤정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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