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러시아 공백 메워…에너지 패권 잡은 미국
2024-07-02 (화)
서울경제=김경미 기자
▶ 2021년 이후 공급 50% 늘려
▶작년 최대 LNG 수출국 부상
▶ AI 열풍에 중국 등 수요 급증
▶교역량 사상 첫 4억톤 돌파
러시아 천연가스에 의존했던 유럽연합(EU)의 에너지 시장이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재편되는 동안 미국 에너지 기업이 핵심 수혜를 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EU가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을 자제하면서 생긴 에너지 공백을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가 메우며 미국이 세계 최대 LNG 수출국의 자리를 꿰찬 것이다.
27일(현지시간) 텔레그래프는 이날 발간된 국제가스연맹(IGU)의 최신 연례보고서를 인용해 2023년 전 세계 LNG 교역량이 처음으로 4억 톤을 돌파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미국은 이중 약 8450만 톤을 공급해 2021년 이후 세계 공급량을 50%나 늘린 최대 수출국이 됐다.
미국의 성장 배경에는 유럽 시장이 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가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하던 천연가스의 비중이 크게 줄어든 자리를 미국산 LNG가 차지했다는 것이다. 실제 전쟁 이전인 2021년 무렵 러시아는 유럽 천연가스 소비량의 약 45%를 책임졌지만 2022년 개전 이후 15%까지 비중이 줄었다. 또 유럽은 지난해 1억 2100만 톤의 LNG를 수입해 아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LNG 수입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는데 수입 에너지의 절반은 미국산이 차지한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한 지 2년이 넘은 상황에서 선박 등을 통해 수입되는 LNG는 러시아 파이프라인 가스 공급을 대체하는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며 “특히 미국은 러시아가 떠난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잘 수행하며 세계 최대 LNG 수출국이 됐다”고 설명했다. 텔레그래프는 또 영국이 지난해 미국산 LNG 구매에 70억 파운드(약 12조 2000억 원)를 지출해 2018년 대비 33배 늘었다고 강조했다. 이 매체는 “영국이 서유럽의 많은 국가와 마찬가지로 에너지 안보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미국 에너지 기업들이 LNG가 성장하는 타이밍에 제대로 올라탔다는 분석도 나온다. 천연가스는 석탄·석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깨끗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저탄소 시대로 가는 길의 ‘전환 연료’라는 인식이 높다. 또 최근 인공지능(AI) 열풍 속에서 중국이 수입을 늘리고 필리핀·베트남이 지난해 처음으로 LNG 수입국에 이름을 올리는 등 수요도 급증하는 추세다. 리 얄란 IGU 회장은 “LNG는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에너지 위기와 도전에 직면한 에너지 전환을 헤쳐나가는데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IGU는 글로벌 LNG 무역 규모가 2023년 4억 1000만 톤에서 2030년 7억 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관측했다. 다만 지난해 LNG 교역량은 전년 대비 2.1% 늘어 2022년 5.6%에서 한풀 꺾였는데 이는 늘어나는 수요 대비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IGU는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기업들은 LNG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관련 기업을 인수하는 등 용량 확대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최근만 해도 미 석유 기업 셸이 18일 싱가포르 LNG 기업 파빌리온 에너지를 인수했고 26일 텍사스의 에너지 기업 셈프라가 사우디아람코에 연간 500만 톤의 LNG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는 미국 LNG 생산량이 2050년까지 3배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한편 IGU는 글로벌 LNG 성장을 대비해 선박 건조와 터미널 건설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고도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월 말 기준 전 세계 LNG 선박 수주잔량은 359척으로 현재 운항 중인 선박의 51%를 차지한다. 얄란 회장은 “올해에만 77척의 LNG 선박이 인도될 것”이라며 “미국에서 예정된 LNG 용량 증가를 대비하는 선주들의 기대감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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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김경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