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치료는 못해주어도

2024-06-28 (금)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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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시즌이라 축하의 소리들이 들려온다. 5년간의 이비인후과 전문의 수련과정을 마치는 잔치에 아들 제임스가 가족을 초대 하였다. USC 이비인후과 교수님들은 27 명이나 되었는데 그중에서 또 각종 전문으로 나뉘어져 코와 후각전문, 귀 질환과 청력, 후두와 목소리, 무호흡증, 목의 종양수술과 갑상선 수술, 성형이비인후과, 뇌수술에 관련된 이비인후과, 소아 이비인후과 등 세분화된 다양한 전문에 놀랐다.

올해 그 병원에서는 여자, 남자 2명씩, 총 4명이 이비인후과 전문의 수련과정을 마쳤는데, 졸업하는 수련의 들은 5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어려웠던 일, 재미있었던 일, 실수 했던 일들을 기억해내고 나누며 서로 축하해주었다. 끈끈한 전우애 같은 감정과 어려웠던 과정을 마무리 짓는 기쁨과 성취감으로 들떠 있기도 했지만, 이제는 서로 헤어져 각자의 새로운 인생여정을 떠나는 설렘과 동시에 아쉬움, 막연한 슬픔이 눈물로 살짝 비치기도 했다. 나도 벌써 수십 년 전에 있었던 내과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나올 때의 기쁨과 헤어짐의 슬픔과 또 앞으로 주어질 더 무거운 책임감으로 만감이 교차되었던 때가 떠올랐다.

여러 축하 순서가 지나고 이비인후과 과장님의 말씀이 있었다. “여러분은 지난 5년간 매우 강도 높고 좋은 수련을 받았습니다. 교수님들도 여러분의 지식습득 과정과 좋은 태도에 대해서 만족하고 계십니다. 어디에 가도 여러분들은 잘 배운 의학적 지식과 기술로 좋은 평판을 받을 것이며 많은 환자들을 도와 낫게 해줄 것을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의사인 우리들은 치료 할 수 없는 질환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렵고 많이 진행된 질환의 환자들을 대하게 되었을 때 여러분들은 어떤 태도를 취하겠습니까? 우리는 모든 병을 치료 할 수는 없어도 환자를 care 할 수는 있습니다. 모든 환자들을 끝까지 ‘care’하는 의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care 혹은 돌봄’이라는 평범하게 생각했던 단어가 나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의사뿐 아니라 인간으로써 한 사람을 care 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어머니가 아이의 울음만 들어도 필요를 알아차리는 마음으로, 우선 신속하고 구체적인 적절한 치료와 통증을 다스리는 것에 소홀하지 않아야 될 것이다. 동시에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를 점검해 본다. 환자의 입장에서 같은 마음을 가지고, 의사의 표정과 말투를 바라보며 자신의 상황과 희망을 결정하는 환자 앞에서 따뜻하게 웃어주기, 자세를 낮추어 경청해드리기, 손 잡아드리기, 원하시는 분들에게 기도 해드리기, 죄책감에 사로잡힐 수 있는 환자에게 정죄하지 않기,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소풍 나온 나그네임을 함께 동감하기, 환자의 친구나 가족들은 같이 있어주기, 음식나누기, 주물러드리기, 가능하면 같이 걷기. 등등이 있을 것이다.

과장님 이야기를 되새기며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수련과정 때의 패기는 어디가고 이런저런 이유로 약해지고 자기중심적으로 되고, 어려운 상황에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자주 생기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질병과 싸우며 살아가고 있다. 현실은 늘 장미 빛이 아니며 질병과 죽음의 사자는 냉정하게 무표정하며 싸늘하다. 우리들은 절망 앞에서 약해지며 울부짖는다. 그러나 절망의 싸늘함도 끝까지 함께하는 우리의 온기에는 녹아질 것이다. 심지어 죽음이 우리를 덮칠지라도 끝까지 서로 care 하는 우리는 죽음의 강을 넘어 더 아름다운 동산에 있게 될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끝까지 함께 care 하는 의사, 그리고 한 사람이 되자.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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