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을 함께 보다
2024-05-17 (금)
이근혁 / 메릴랜드
마음이 수시로 변하는 건, 선과 악이 속에 공존하며 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혼란스러움이 내 마음과 같다. 항상 선을 추구하려 하지만 악이 한 번씩 나타난다. 독일에서의 성지순례는 성지와 악지를 넘나들며 증오와 탐욕이 어떠한 결과로 나타나는지를 경험하는 행로다. 나에게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를 알려준다.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류 최악의 인종말살 사건은 자기 민족이 훌륭하다고 유대인을 학살하며 시작된 거다. 죄도 없는 이웃을 개잡듯이 잡아다 개스실에 몰아넣어 죽이고, 머리카락을 모아서 침낭을 만들고, 사람의 기름을 채취하여 비누를 만들어 사용하고 생체실험을 했다. 후세를 위한다는 생체실험의 의도는 인간의 사악함을 감추고 포장한 비뚤어진 모습의 끝장이다.
악의 시작은 표어가 그럴듯하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정문에 있는 “Arbeit Macht frei-노동이 자유를 만든다” 희망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치는 수감자들을 노예처럼 부려먹고 결국에는 모두 학살했다.
사진을 진열해놓은 곳에서는 눈뜨고 볼 수가 없다. 한국의 식용 개사육장에서 보았던, 겁먹고 모든 것을 포기한 개의 눈동자와 같다. 인간과 개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식용과 애완용으로 나누어서 합리화시키는 것이나 그 잔인성은 비슷하다. 초점 없이 혼이 떠난 듯한 모습을 보며, 지금의 내게 일말의 행복감이라도 있다면 벌을 받아야 할 듯한 죄책감이 들었다.
나도 크던 작던 매일 매순간 선악을 넘나들지 않았던가. 그래서 당신의 한 몸 희생으로 우리를 구제하겠다고 하신 거 아닌가. 세계 곳곳에 그분을 따르겠다고 참형을 당한 분들의 역사가 많다. 기적은 가까이에 있었다. 그 분들이 향한 것을 보고 따르려는 나의 마음이 기적이다. 나의 기적이 그분의 기적에 녹아들 때 세상은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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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혁 / 메릴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