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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수요·공급 맡기고 저금리…‘주택 구입’에 눈 돌린 젊은이들

2024-05-02 (목)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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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부동산시장의 부활
▶1990년대 공급과잉 겹치며 주택가격 폭락
▶은행들 경쟁적 대출 회수로 경제활력 잃고 고베·동일본 대지진에 재정 악화 공포까지

▶ 2001년 집권한 고이즈미, 정부 역할 줄이고 ‘2% 물가 상승’ 목표로 무제한 통화공급도
▶엔화 약세·금융기관 경영 개선 효과 등 영향
▶도쿄 신축 아파트 매매가 10년 만에 2배로

인구 감소·소비 위축…최악 경제 환경에도
정부 정책에 따라 침체된 시장 반등 가능


오랜 경제분석가 생활, 그리고 20번이 넘는 도쿄 방문 경험 덕분에 일본에 대해 꽤 알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최근 5년 만에 도쿄를 방문한 후 ‘내가 오만에 빠져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신주쿠 마루노우치 도요스 일대를 답사하면서 다른 어떤 나라보다 강력한 경기 호황이 진행 중임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길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는 물론, 도심 곳곳에 끝없이 올라가는 건물을 보면서 어떻게 일본 경제의 부활이 가능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아야 한다. 아래 표는 일본 금융권의 민간부문 대출 잔액 변화를 보여주는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약 15년 동안 줄어든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출이 감소하면 기업이나 가계는 투자와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극심한 경기의 불황을 유발한다.


그렇다면 왜 일본 금융기관들은 대출을 줄이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주택가격 하락 때문이었다. 1980년대 부동산 가격 상승 국면으로 가계와 기업의 주택담보대출이 급격히 증가했지만,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갑작스러운 주택가격 하락으로 부실 대출로 변해버린 것이다.

예컨대 일본 도쿄에서 매매가격이 10억 원인 단독주택을 매입하면서 9억 원을 대출한 직장인 A씨를 생각해 보자.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90%인 상황에서 대출금리가 연 8%까지 급등하는 가운데, 주택가격이 8억 원까지 떨어졌다면? A씨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을 보내는 가운데, 여행 계획을 취소하고 새집에 어울리는 차를 장만하겠다는 꿈을 접을 것이다. 그리고 주택가격이 7억 원까지 내려가면 이 모든 노력이 허망하다는 것을 깨닫고 은행의 대출 원리금 및 이자 독촉 고지서 앞에서 개인파산 신청 서류를 작성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주택가격 하락 흐름이 이어지는 한 일본 금융권의 대출 회수로 경제 전반의 활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연유로 일본 정부는 어떻게든 주택시장을 회복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경기 활력이 떨어지자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 목적으로 1990년대 들어 주택 공급 촉진 정책을 폈다. 주택 공급량은 1991년 137만 호에서 1996년에는 164만 호까지 늘었다. 그러나 주택시장도 수요와 공급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주택시장은 오랜 기간 동안 과잉 공급으로 고통을 받았다.

역대 정부의 노력에도 주택가격 하락은 멈추지 않았지만, 2000년대 중반 고이즈미 내각 때 회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2001년 4월부터 약 5년 반가량 집권한 고이즈미 정부는 경제의 수요 부족 문제뿐 아니라, 공급 측면의 비효율성에 주목했다. 특히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민간에게”라는 구호와 함께, 주택공급 부문에서 정부 역할을 크게 줄였다. 물론 고이즈미 정부의 정책 근간이 재정개혁에 맞춰졌기에 이뤄진 일이었지만, 이는 일본 주택가격의 하락 흐름을 저지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고이즈미 정부의 주택 공급 축소 노력만으로 일본 주택가격이 돌아서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일본 은행이 인플레이션 위험을 과대 평가하며, 2006년부터 다시 통화긴축 정책으로 선회했기 때문이었다. 더 불운했던 것은 2007년 말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일본 수출기업들의 연쇄적인 도산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지난 30년 동안 일본 경제의 변화를 살펴보면, 정책 실수뿐 아니라 불운까지 겹쳤다는 생각이 든다. 1995년 고베 대지진, 2011년 도호쿠 대지진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것은 물론 재정 악화에 대한 공포가 경제계를 휩쓸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 대비 1.5배 이상으로 부풀어 오르면서, 그리스나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처럼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는 이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따라서 일본 경제, 특히 부동산시장이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강력한 통화정책이 필수적이었다.


수많은 논란 끝에, 강력한 통화공급 확대를 주장한 구로다 히로유키가 2013년 3월 일본은행 31대 총재 자리에 오름으로써 역사적인 정책 전환이 시작되었다. 그는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이라는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 2%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위의 표는 일본은행의 자산 잔고 변화를 보여주는데, 2007년 110조 엔에서 2013년 192조 엔 그리고 2021년 791조 엔으로 부풀어 오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통화공급 확대는 경제에 세 가지 영향을 미친다.

첫 번째는 엔화 약세다.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목적으로 돈을 대거 풀 것이라는 예상이 더해지면서 ‘앞으로 가치가 떨어질 엔화를 매도해 수익을 얻자’는 목적으로 외환 거래가 촉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두 번째 효과는 금융기관의 경영수지 개선이다. 일본은행이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국채와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수함에 따라 매매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효과는 시장금리 하락이다. 2015년 한때 10년 만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0.85%까지 떨어졌고 변동금리 대출이자는 0.50%에 불과했다.

공급 물량이 줄어든 가운데 대출금리까지 떨어지니, 일본 주택시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스타트를 끊은 것은 도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 지역이었다. 특히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도쿄의 신축 맨션(한국의 기둥식 아파트) 가격이 2013년 5,000만 엔을 바닥으로 상승하기 시작해 2023년 1억 엔의 벽을 뚫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모든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 것은 아니었다. 젊은이들이 떠나 이른바 ‘지방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들은 빈집이 늘어나는 가운데 거래 자체가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194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 부머가 자손들에게 본격적으로 자산을 상속하면서 지방에 잠자고 있던 예금이 도쿄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

주택 공급 감소와 팽창적인 통화공급 확대조차, 모든 부동산시장을 살릴 수는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주택가격 상승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투자심리가 빙하기에 진입했더라도 적절한 정책이 시행된다면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일본을 연상시키는 부동산 불황에 빠져든 중국의 정책당국자들이 일본의 경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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