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활절과 앨러지

2024-04-30 (화) 박명희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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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지나고나면 이제 연두빛 봄이 가고 푸른 여름이 오는게 당연했었다. 이른 봄 3월이 되면 남편의 눈물 콧물 재채기와 함께 봄이 시작된다. 미국은 공기가 깨끗해서 누런 황사먼지가 없다고 좋아했더니 이민선배가 입빠른 소리 하지 말라더니 나는 그해부터 봄이 오면 한달은 앨러지약을 먹어야하고, 앨러지가 뭐냐던 남편도 십년이 지나고나서부터 늙은 나이에 눈꼽이 덕지덕지끼고, 누런 콧물을 청소하고, 온사방이 시끄럽게 재채기를 하면서 꼬질꼬질하게 봄맞이를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니 빨래를 개다보면 함께 돌린 휴지로 허옇게 된 옷과 사탕이 나오면 아이고 내가 못살아 아까는 분명히 없던데 남몰래 남편이 다른 옷도 넣었다고 한바탕 퉁탕거린다. 물론 무엇이든 세탁기에 돌리면 깨끗할 거라며 색깔이나 소재와 상관없이 무엇이든 한꺼번에 넣는 내 책임도 있기는 하다.

봄이 되면 밭에 꽂혀있는 부지갱이에도 싹이 돋는다고 한다. 낙엽 더미속에서 빠꼼히 새순이 돋아나고 죽은줄 알았던 나뭇가지에서도 어느날 부터인가 봉긋봉긋하고 간질간질하면서 새순이 나온다. 제일 먼저 동네 입구에 있는 우리집보다 더 오래되고 못 생긴 살구나무에서 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차들이 오며 가며 구경을 하고 사진도 찍는다. 어느해인가는 메추리알 만한 살구가 엄청 달려서 잼까지 만들었다. 그래서 유실수를 심으면 무엇이든 그렇게 주렁주렁 달리는줄 알고, 먹는게 남는거라며 매실, 단감, 한국배, 대추까지 심어놓고 사먹는것보다 돈은 훨씬 많이 들었지만 어쨋건 그래도 수확의 기쁨을 누리긴 한다. 그러다 남편이 유튜브를 보고 잘난체하며 가지치기를 한 뒤로는 웬일인지 살구와 매실나무는 시원찮아서 내속을 태운다. 퇴비랑 비타민과 인삼물도 별 효과가 없어서 올 봄에는 너 계속 이러면 확 베어버린다고 협박을 하고왔다. 봄 꽃도 순서가 있고 꽃 모양도 자세히보면 조금씩 다르다. 살구, 매실, 다음엔 맛없는 미국배, 감꽃, 마지막으로 대추꽃이 피고나면 봄날은 간다.

여기저기 파놓은 텃밭에선 신선초, 부추, 깻잎, 보라빛향기의 희야신스, 노란 수선화, 진보라 제비꽃, 보라빛 도라지꽃까지 뒤죽박죽 섞여서 올망졸망 피기는 하는데 내 눈에만 곱다. 차분하고 진득하지 못한 나는 ‘이상하다 없어졌네!’ 하면서 해마다 예쁘다고 오만가지를 계속 심어대니 멋있고 조화로운 정원이 되기는 틀린듯하다. 원래있던 보라빛 무궁화 옆에 반대색인 노란 개나리를 심고 아차 싶었지만, 꽃피는 시기가 달라서 다행이다 하고, 커다랗다는 접시꽃을 심으면 간장종지꽃이 되고, 블루베리인줄 알고 심은 포도는 마구 자라 아치도 만들어야 한다, 미니장미랑, 돈이 들어온다는 노란 돈나무는 어찌된건지 처음보다 더 작아졌지만 그래도 참 예쁘다. 이번엔 채송화를 한가득 얻어다 도라지밭에 심으며 얘네는 키다리와 땅꼬마니 함께 해도 괜찮을것 같으니 사이좋게 자라길 바란다.


봄은 처음과 어울린다. 사계절의 처음인 봄이 오면, 봄처녀는 봄나물을 뜯으러 봄꽃을 머리에 꽂고 봄바람이 나지만,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하고 봄비를 맞으면 웬지 조금은 자랄듯하고 봄나물은 싱그럽다.

미국은 기독교나라여서 인지 부활절에 큰 의미를 두며 부활은 다시 살아나는것이니 봄과 어울리는듯하다.

그동안 부활절이라면 어느 봄날의 일요일이라고 생각없이 지내왔다. 토끼를 그린 달걀을 한바구니 삶아 나누며 누군가에게 기쁨을 준다. 성당달력에도 부활절은 언제나 일요일이여서 빨간 공휴일 표시가 안되었나 했었다. 알고보니 일년 중에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은 양력으로 3월 20일경이고, 그때와 제일 가까운 보름달이 뜨는 음력15일 다음에 오는 첫번째 일요일이 부활절이래서, 올해는 3월31일이 부활절이라는걸 이제야 알게 되면서 그동안 관심없이 지냈던 무지함을 반성했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상식을 나랑 남편만 빼고 다 알고 있었다는걸 정말 믿을수없으니, 나만 무식한건지 친한 이들에게 살짝 물어봐야겠다.

그렇다고 생각해보니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북반부에 사는 우리는 봄에 부활절인게 당연하지만, 지구의 반대쪽 남반부는 계절이 반대라서, 호주나 아르헨티나는 이제 가을이 시작되어 낙엽이 떨어지고, 게다가 크리스마스는 한여름이여서 수영복을 입는걸 직접 가서보니 약간 어이가 없고 실감이 나질 않았다.

봄과 함께 온갖 앨러지에 가렵고 힘들기도 하지만, 무엇이든 시작하려면 예수님이 부활하신것 처럼, 달걀에서 병아리가 나오고, 새싹이 나오느라 단단한 껍질을 벌리고 나오는 새싹처럼, 부활의 봄을 지내고 푸른 여름을 싱싱하게 맞이 해야겠다.

<박명희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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