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그리움

2024-04-25 (목) 나혜경/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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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봄이라지만 오늘 새벽의 기온은 30도를 조금 웃돌아 꽤 쌀쌀했다. 새벽에 차에 시동을 걸어보는데 자동차의 앞 창을 비롯한 외관에 살얼음이 끼어 있었다. 새벽달빛마저 냉기를 품고 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웃집 할머니가 강아지의 급한 용무를 해결해주기 위해서 따뜻해 보이는 가운을 걸치고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언제 보아도 손을 흔들며 아는 체를 해주고 안부를 물어주는 다정한 이웃인데 체격이 큰 할머니가 키우는 강아지는 어찌나 작은지 극명하게 대조가 되어 웃음이 난다.

주방 창문 앞에 해마다 봄이 되면 화사하게 꽃을 피우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올해도 나무는 흰 빛깔의 별 모양의 꽃잎을 아낌없이 매달고 작년보다 더욱 덩치를 키워 우뚝 섰다.


봄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던 내가 어찌 된 일인지 봄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얼마 전 4월 16일은 생각만 해도 가슴 아픈 세월호 10주기가 지났고 역사적인 4.19 혁명과 5월에는 5.18 민주화 운동, 5월 23일 고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 등을 떠올리게 될뿐더러 개인적으로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이 어쩐지 나는 부담스러운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마치 체격이 큰 이웃집 할머니와 어른 손바닥만 하게 작은 몸집의 강아지를 보는 것처럼 봄과 나는 어울리지 않는 계절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올봄은 유난하다. 마치 보통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사람에게 하루아침에 마음을 빼앗길 만큼의 매력을 느끼듯이 설레기도 한다. 여기저기 형형색색의 꽃을 봐도 좋고 마른 나뭇가지에서 물을 올려 연두색 새순이 터지는 것을 봐도 아름다움을 느끼고 하늘이 맑게 빛날 때 혹은 간지럽게 파고드는 실바람이 기분 좋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어느새 나이가 들어감에 일손을 줄이게 되어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자연의 순환에 마음을 기울이는 여유가 생긴 탓인가도 싶다.

시간이 여유로워지다보니 집에서 오디오북을 틀어놓고 듣곤 하는데 특히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고 박완서 작가의 작품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박완서 작가가 작고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에 빠져 망연자실했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가신 지 벌써 13년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분이지만 나는 그 소식에 적잖이 슬펐다. 나의 독서량은 극히 적어 그 분의 소설이나 수필을 겨우 몇 편이나 읽은 정도지만 이제 더 이상 작가의 그 유려하고 재치 있는 필력의 신간소설과 산문이 없다는 사실이 허전했고 강한 허탈감을 느꼈었다.

그 중에서 특히 오디오북으로 다시 들은 “그리움을 위하여’ 와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여전히 나에게 감동적이었다. 나는 소설이 끝나면 다시 또 돌려서 듣고 또 듣고 하면서 내용에는 감동하고 글을 쓰신 작가님을 흠모하면서 그리워하였다.

봄을 알리는 개나리와 목련이 피고 지고 벚꽃이 피었다가 지는 이 봄을 유난하게 좋아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과 생명력의 순환에 각별해지는 마음과 함께 새롭게 다시 만난 고 박완서 작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나혜경/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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