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욘드 유토피아’를 관람하고: 동정과 애절 사이

2024-04-24 (수) 이기훈 워싱턴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 재미한국학교 워싱턴 협의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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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미주통일연대가 주최한 비욘드 유토피아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내 옆에는 탈북자 출신인 한 평통위원이 앉아 있었는데 영화 상영 내내 흐느끼느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끝내 영화의 마지막을 보지 못하고 자리를 뜨는 것을 보게 되었다.

신약성경에 ‘불쌍하다’ 라는 뜻의 그리스어 단어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우리 말로 동정(同情)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엘레에오’가 있고 애절(哀切)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스플랑크니조마이’ 라는 복잡한 단어가 있다. 엘레에오는 부자가 가난한 자를, 왕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과 같은 경우에 주로 쓰인다. 스플랑크니조마이는 그리스어 명사 ‘스플랑크논’에서 나왔다. ‘스플랑크논’은 인간의 내부 장기나 심장을 가리키는 단어이고 스플랑크니조마이는 내장에 통증을 느낀다는 뜻으로 상대방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는 것으로 우리 말로는 애절과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영어로는 Compassion으로 번역이 되는데 이는 고통을 함께한다는 뜻이다.

애절은 창자가 끊어진다는 뜻으로 중국 고사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전쟁중 배에 타고 있던 병사 하나가 심심해서 새끼원숭이 한 마리를 사로잡았다. 이것을 본 어미원숭이가 큰 소리로 슬피 울면서 배가 가는 방향을 따라 며칠 동안 수백리길을 쉬지도 않고 쫓아왔다. 마침내 배가 강기슭에 닿았을 때 어미 원숭이는 재빨리 자기 새끼가 있는 배로 펄쩍 뛰어올랐으나, 몹시 고통스러워하며 자기 새끼에게 가지도 못하고 비통한 울음소리를 지르며, 그만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병사들이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보았더니 애통한 슬픔을 못 견딘 듯,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내가 제대하고 몇 년 동안 신문기사에서 탈영병이 총을 가지고 탈영한 후 헌병에게 포위당한 후에 총으로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면 그후 며칠동안 그 생각이 꿈에 나타나 잠을 못 이룬 적이 많았다. 이는 내가 군생활 시절에 거의 비슷한 상황에 처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북한에서 고문과 굶주림에 시달려 보았던 탈북민들은 눈을 바로 뜨고 이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를 감상할 수 없었을 것이고 며칠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세 드신 분들 중에서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과거 우리가 전쟁후에 가난해서 삼사일을 굶었을 때를 생각하고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신 분들이 많으실 것이다. 하지만 요즘같이 먹거리가 풍부한 시절에 다어어트를 제외하고 며칠을 굶어보지 않은 젊은이들이 이런 고통을 이해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분단후 거의 80년이 지난 지금 국민의 대부분이 분단 이후에 태어나 배고픔이나 고문 같은 것을 실생활에서 체험해 보지 못한 세대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남북한이 아직도 서로를 이해하는 형제인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탈무드에는 머리가 둘인 쌍둥이를 하나의 인간으로 볼 것인가 둘로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다. 답은 쌍둥이의 한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 다른 쪽 머리도 비명을 지르면 한 사람으로 치고, 다른 쪽 머리가 아무렇지도 않다면 두 사람으로 쳐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북쪽에서 태어났다는 죄만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동포들을 형제로 생각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그들을 지옥 같은 현실에서 구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영화를 마치고 수미 테리 박사와 김성은 목사와의 질의 응답에서 한 분이 이 영화를 보고 워싱턴에 사는 동포로서 어떻게 이들을 도울 수 있는지 질문하는 것을 보고 아직 우리가 북한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형제 자매로 여기는 분들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한가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기훈 워싱턴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 재미한국학교 워싱턴 협의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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