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곡도 들읍시다

2024-04-20 (토) 나정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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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전 한국에 갔다가 가곡집 디스크 6개를 사왔다. 아침식사를 하고 실내를 걸으며 음악을 듣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가사는 거의 ‘시’라 감동도 느끼며 이따금 글의 소재도 얻고는 한다. 가곡 중에는 잃어버린 조국을 님이라 부르는 노래가 많다. 또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가 왜 그렇게 많은지 가곡들이야말로 불후의 명곡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한국민족은 오랫동안 외침과 가난 속에서 살아오며 한이 많은 민족이다. 대체로 노래가 슬프다. 우리 민족은 흥도 많다. 그 흥을 돋우는 노래와 춤으로 슬픔을 극복하였을지도 모른다. 광복 이후에는 재즈, R&B, 로큰롤, 팝 같은 외래 음악들이 들어와 젊은 층에 빠르게 퍼져 가곡의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옛날에 유행가라 부르던 대중가요는 서민들이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워하고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것이 많다. 언제부터인가 대중가요를 ‘트로트’라 부르게 되었다. Trot는 사전에 말이 빠르게 걷는 속보, 춤의 스텝에 맞춘다는 뜻이라 했다. 경쾌하게 춤추며 부르는 노래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건지 아니면 국제화시대이니 한국의 대표적인 노래를 외국인에게도 알리고 싶어서인지 아리송하다.

한국의 모 방송국에서 거액의 상금을 걸고 트로트 경연을 펼쳤다. 동요나 가곡을 불러야할 아이들 입에서 사랑과 이별의 노래가 흘러나오니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한국의 트롯 가수들과 일본의 ‘엔카’ 가수들이 경연을 펼치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 가사만 다를 뿐 트로트나 엔카나 비슷한 노래였다. 한국의 대중가요의 시작이 일본 엔카의 영향을 받았다는 풍문이 사실이었던가.

K 팝이 세계무대에서 인기를 높이고 있다. 노래를 통하여 한국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 것은 바람직하다. 한글과 영어가 섞인 노래들이 한국 내에서 일반화되어간다면 국적을 잃어버린 거리의 간판들과 함께 서글픈 일이다. 잊혀져가는 한국의 전통과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서라도 가곡을 더 듣고 부르는 것은 어떨까.

<나정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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