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원짜리가 14년 만에 1억, 비트코인의 역사
▶2008년 금융위기, 달러 가치 폭락
▶제도권 화폐 향한 불만으로 등장
▶ 미스터리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
▶블록체인 시스템 참여 채굴자에
▶수학문제 해결 보상으로 코인 지급
▶2010년 0.003달러였던 코인 가치
▶현재 글로벌 자산 순위 8위로 부상
▶가상화폐 72% 사라지며 존재감
▶금리인하 이후 랠리 계속될지 주목
지난달 비트코인이 원화 기준으로 처음으로 1억 원을 넘었다. 발행 초기 1BTC(비트코인의 단위) 가치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제로였던 점을 회상하면 격세지감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서 달러를 대규모로 발행해 돈 가치를 떨어뜨리자 제도권 화폐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결과, 민간 영역에서 비트코인이 탄생했다. 2011년 1BTC가 1달러가 된 후 13년 만에 1억 원까지 치솟았으니 그 폭등 수준에 놀랄 만도 하다. 수익률만 따지면 금보다 더 나은 투자라 할 수 있겠다. 비트코인 탄생의 기원과 원리를 살펴봤다.
2008년 10월 31일 미 동부 시간 오후 2시 10분. 암호학 전문가와 관련자 수백 명에게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이 한 전자우편을 발송한다. 그는 신뢰할 만한 새로운 전자화폐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었다. 제3자 중개인이 필요 없는, 당사자 간 1 대 1로 운영되는 시스템으로 사토시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컴퓨터 용어를 따서 화폐 이름을 ‘비트코인’이라 알렸다. 중앙은행이나 금융기관의 도움 없이 블록체인 기술로 전자결제 시스템을 쓰는 사람들이 거래내역을 확인하면서 안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려 했다. 블록체인은 새로운 블록이 바로 전 블록에 대한 인증정보를 갖고 사슬로 묶는 기술이다. 여러 노드(참가 컴퓨터)에 분산해 검증ㆍ저장돼 사실상 위ㆍ변조가 불가능하다. 정보 원본을 유지하며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중앙통제장치인 서버가 없다.
이 블록체인 시스템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정해진 시간 내에 수학문제(해시함수)를 가장 빨리 풀면 보상으로 비트코인을 준다. 해당 문제를 푸는 것을 마이닝(mining)이라 하는데, 금광을 캐듯 채굴자가 비트코인을 캐는 데 열중한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비트코인은 누구나 참여하는 퍼블릭 블록체인 탄생을 이끌었고 이들 블록체인 신봉자들을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에 가까운 자유주의자로 불렀다. 혹자는 이런 이유로 비트코인을 사이버펑크와 관련해 이야기한다. 사이버펑크는 1980년대 공상과학소설(SF), 즉 문학의 한 장르로 출발했다. 중앙집권화한 국가와 기업구조에 대항해 개인들의 자발적 참여를 중요시하는 탈중앙화한 문화를 옹호하는 운동이었다.
비트코인에 사용한 주요 기술로는 웨이 다이(Wei Dai)가 1998년 익명성과 분산 저장방식으로 개발한 가상화폐인 비머니(B-Money)를 들 수 있다. 해시함수로 암호화해 서로 연결된 블록으로 저장한 블록체인의 원조격으로 보면 된다. 거래 발생으로 새로운 블록을 추가할 때 가장 먼저 암호를 풀어 성공한 참여자에게 비머니 인센티브를 주는 작업증명(PoW, 비트코인이 사용)과 보유한 암호화폐 양에 따라 일부 참여자에게만 우선적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지분증명(PoS, 지금의 이더리움이 사용) 방법도 제안했다. 당시의 기술적 한계로 비머니가 개발되지는 않았으나 작업증명은 비트코인에 전수됐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채굴되는 비트코인의 양은 줄어들게 설계돼 있다. 최초의 50개 비트코인을 제네시스 블록이라 한다. 사토시가 2009년 1월 3일 제네시스 블록을 만들었다. 비트코인 채굴량은 처음 4년 동안은 10분당 50개, 그 뒤로는 10분당 25개, 2140년에는 공급량이 0이 된다. 비트코인은 2140년까지 2,100만 BTC가 한정돼 공급된다.
채굴량이 4년마다 줄어드는 것을 반감기라고 하는데, 올해 4월이 반감기에 해당한다. 이는 1998년 스마트 계약 기반의 암호화폐인 비트골드라는 가상화폐의 원리와 구조를 고안한 미국의 컴퓨터공학자인 닉 재보의 생각을 담은 것이다. 그는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는 참가자들이 어느 정도의 컴퓨터 파워를 이용해 암호화된 퍼즐을 풀고, 퍼즐이 풀리면 비트골드를 얻게 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퍼즐은 풀릴 때마다 조금씩 어려워지면서 비트골드를 얻는 것도 어려워지게 되나 비트골드 역시 세상에 나오지는 못했다.
스마트 계약은 비트코인이 대금결제, 송금 등 금융 거래에 사용했으나 2013년 이더리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이 광범위하게 적용하게 된다. ‘조건이 맞으면 자동적으로 계약이 체결되는’ 모든 종류의 계약을 처리할 수 있도록 기능을 확장한 것이다. 이더리움이 스마트 계약 기능을 제대로 포함한 가상화폐라 불리는 이유다. 사실 스마트 계약은 재보가 1996년에 만들었다. 그는 그 원리를 다음과 같이 음료 자판기에 비유했다.
“음료 자판기는 합의 원리를 물리적 하드웨어에 포함시킨 하나의 장치다. 자판기는 여러 가지의 규칙들(계약들)로 작동한다. 예컨대 자판기에는 1달러를 넣으면 물 한 병이 나온다는 ‘계약’이 있다. 이 경우에 1달러를 넣으면 물 한 병이 나온다. 1달러를 넣었는데 물이 나오지 않으면 그것은 합의 계약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1달러를 넣지 않았는데 물 한 병이 나오면 그 또한 합의 계약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재보는 스마트 계약의 원리를 고안하면서 디지털 혁명으로 제3자를 통하지 않는 자동화된 계약에 의한 합의 기능이 널리 사용될 것을 예측했다.
최초의 비트코인 수령자는 53세 중년 남성 할 핀니였다. 그가 소위 ‘2번 노드’가 된 것이다. 사토시와 핀니는 2주간 비트코인을 채굴하고, 지갑을 만들고 서로에게 전송했다. 두 사람이 네트워크를 운영한 결과, 비트코인이 꽤 쓸 만한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핀니는 자신의 컴퓨터로 채굴해서 비트코인 1,000개를 생성한다. 소프트웨어가 강도 높은 데이터 작업이 필요한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핀니는 계속 채굴하다가는 컴퓨터가 고장이 날 것을 걱정하며 채굴을 중단했다. 그는 루게릭병을 진단받고 휠체어 생활을 하다 2014년 8월 사망했는데, 그의 시신은 극저온 상태로 보관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는 비트코인 개척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됐다.
비트코인이 화폐로서 가치를 갖고 현물과 거래가 된 대상은 피자였다. 미국 프로그래머 라슬로 한예츠(Laszlo Hanyecz)가 2010년 5월 22일에 1만 BTC로 피자 두 판을 구매한 것이 최초의 거래로 기록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5월 22일은 ‘비트코인 피자데이’로 불린다. 한예츠는 제르코스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사람에게서 피자 두 판을 받은 인증 사진을 게시했다. 당시 1BTC의 가치는 0.003달러였다. 지금 생각하면 세상에서 가장 비싼 피자인 셈인데, 훗날 많은 언론이 한예츠에게 천문학적 돈으로 피자를 먹은 것에 대해 물었다.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가 만든 ‘피자데이’가 비트코인 초창기 역사의 일부가 된 데 대해 자부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2010년 3월 최초로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거래소(bitcoinmarket.com)가 등장했다. 대형 해킹 사건으로 2014년 파산한 ‘마운트 곡스(Mt. Gox)’가 같은 해 7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가상화폐 전문가들은 인터넷을 발명한 제도권 내 전문가들과는 궤를 달리 했다. 그들은 기술을 혁신하기를 원한 게 아니라 ‘사회를 혁신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암호의 보편성이 이 세상을 더 자유롭게 할 것이라 기대했다. 그들은 국가보다는 시장을 신뢰했고, 미래 비전 안에 오스트리아 학파의 자유주의 경제학이 녹아들어 있었다. 이들은 암호와 시장으로 국가나 규제, 법과 같은 다른 사회 시스템들을 대체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들에게 자유의 가장 큰 적은 자본이나 시장 또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바로 국가였다. 인터넷 산업이 성장하면서 이들은 국가 외에 초국가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싸워야 한다는 숙명을 깨달았다.
비트코인은 현재 글로벌 자산 순위에서 8위로 뛰어올랐다. 업계에서는 그 가치가 더욱 올라갈 것이라며 주목하고 있다.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에 이어 향후 펼쳐질 금리 인하에 따른 유동성 장세가 펼쳐질 경우를 예상해서다. 2020년 이후 가상화폐 프로젝트의 72%가 사라졌지만, 최근 비트코인 랠리가 관련 업계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비트코인으로의 자금 흐름이 더욱 탄력을 받을수록 버블 논쟁과 디지털 세상에서의 결제 수단에 대한 논의가 무르익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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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경 UNIST 글로벌산악협회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