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선·사진)
2015년부터 5년간 참석한 할렘 페스티벌에서 자신의 이름을 한글서예로 써주기를 기다리는 줄지어 선 타인종들.
최초 여성 국전 초대작가로 미주지역 붓글씨 쓰기 운동을 전개해오고 있는 박원선 고문, 미주한인서화협회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협회의 큰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서화협회 회장을 2번이나 역임하며 협회 활성화 및 한국 서화 문화의 저변 확대와 보급에 기여해 오고 있다.
”한숨 자고 새벽 2~3시에 일어나 학생들에게 나눠줄 체본이나 본인의 시로 한글 작품을 쓰다보면 날이 밝는다. “는 박 고문이 처음 서예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78년, 대학친구들과 함께 김중각 선생에게 한글 서예를 사사했다. 한국에서 5년동안 한글 서예로 고체(판본체 민체 서간체)와 궁체 (정자체 반흘림체 흘림체 진흥림체)를 모두 썼다.
1984년 미국에 이민 오니 한글서예를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아서 한문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1984년 염진호 선생의 가정문제연구소 부설 서예교실에 나갔고 1986년 미주한인서화협회가 창립됐다. 이웅용, 남현주, 이원식, 박무남 원로회장들을 도와 협회의 발판을 다지는데 힘을 보탰다.
“초창기에는 원로 분들이 많아서 분위기가 아주 진지했다. 지금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그분들에게 배운 가르침은 남아있다”고 전한다.
뉴욕에 와서도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한문 5체 모두 배우고 썼다. 동양화는 7년간 오정 안봉규 스승에게, 소헌 정도준 선생에게 배웠고 지금까지 일도 박영준 경기대학 교수, 고영선 선생에게 서예를 배운다. 그동안은 서예와 서화의 세계를 넘나들며 생활 속 우리 문화를 알려왔으나 요즘은 한글서예에 집중하고 있다.
91년 이원식 스승으로부터 현운(玄雲)이란 호를 받았다. 노자에서 나온 ‘오묘하고 깊은 의미를 담은 ’현운’이란 호는 이후 그의 작품 낙관으로 찍힌다.
후세들의 문화 교육에도 정성을 다했다. 1995년부터 미주한인서화 협회 서예 지도, 퀸즈한인정하상천주교회 한글학교에서 서예지도 10년, 뉴저지 입양아 캠프 프랜드십에서 5년간 서예지도, 뉴저지 한인회관(전 FGS) 서예교실 오픈후 5년간 지도, 퀸즈커뮤니티 칼리지 한글서예 시범으로 한글이름과 가훈 써주기 등이다.
이에 박원선 고문은 2003년 한국문화대전 최우수상(뉴욕 주지사상), 2001년 한국문화예술협회 초대작가(한국문화미술대전 국제문화미술대전 아세아 미술초대전), 2021년 ICA국제문화협회 주최 한국문화예술연구회 주관 ‘2021 국제문화아트 대회’에서 아세아미술대상을 수상했다.
박원선 고문은 그동안 개인전을 세 번 하였는데 2001년 11월 맨하탄 그릴리스퀘어 갤러리에서 서화 개인전, 2017년 5월 플러싱 타운홀에서 개인전, 2022년 서울에서의 개인전이다.
서력(書歷) 48년의 박원선 고문은 서예를 하는 이유로 ”첫째 스스로 편안하다. 둘째 정신적으로 안정된다. 셋째 좋은 글을 많이 접하게 된다“고 든다.
복잡하고 화날 일들도 일단 붓을 잡으면 흥분할 일이 없고 마음이 풀어진다니 이민 스트레스 많은 한인들에게는 필수적으로 필요한 시간이라 하겠다. 더불어 정신문화의 풍요로움을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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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