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 시절의 경제가 더 좋았다고?

2024-04-03 (수)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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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더, 3년 더!”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연호해야할 구호는 “4년 더”가 아니라 “3년 더”가 돼야 맞다. 그들이 기억하는 트럼프의 재임기간은 4년이 아닌 3년이기 때문이다. MAGA의 광팬들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을 ‘태평성대’로 묘사한다. 하지만 대재앙이 덮쳤던 전임 대통령의 4년 임기 중 마지막 한해는 편리하게도 그들의 기억 속에서 말끔히 지워졌다. 대통령으로 말미암아 더욱 엉망이 되어버린 재임 4년차 마지막 해를 잘라냈으니 그들이 기억하는 트럼프의 임기는 3년인 셈이다.

최근 몇 주 동안, 전임 대통령의 우군들은 그의 치적을 턱없이 부풀리는 한편 후임자인 바이든의 성과를 마구잡이로 깎아내렸다. J.D 밴스 상원의원(공화-오하이오)은 조 바이든의 첫번째 재임기는 ‘아메리칸 드림’의 종식을, 트럼프 시절은 미국의 일자리가 미국인들에게 돌아간 ‘호시절’을 대표한다며 “바이든 치하에서 미국인 근로자들은 집단해고를 당하거나 외국인 인력에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팀 스콧 상원의원(공화-사우스캐롤라이나)은 흑인과 히스패닉 등 소수계의 경제형편은 “지금보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 더 좋았다”며 전임 대통령 재임기에 “인종그룹별 실업률이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와 바이든 시절의 경제를 어떻게 기억하느냐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일반 대중도 공화당 정치인들 못지않게 트럼프 시절에 짙은 향수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같은 성격 규정에는 두어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트럼프의 임기 중 첫 3년을 묘사하는데 사용된 최상급 표현은 정확치 않다. 예를 들어보자. 코비드 이전의 트럼프 시절에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실업률이 스콧의 지적대로 낮았던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바이든 집권 이후 소수인종 그룹의 실업률은 트럼프 시절의 수치와 같거나 오히려 낮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흑인 실업률은 지난해 4월 사상 처음으로 5% 아래로 떨어졌다.

여기서 노동시장 전반의 사정을 살펴보자. 일자리는 2019년 12월에 비해 600만개 이상 늘어났다. 연방노동통계국의 자료에 따르면 나이든 본토박이 미국인들이 노동일선에서 대거 물러났지만 반스가 주장하듯 집단해고를 당한 게 아니라 ‘은퇴’한 것이고, 직업을 가진 노동적령기의 토박이 미국인 인구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민자들은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기보다는 예상보다 빠른 고용성장을 이루는데 힘을 보탰다.

이보다 더 큰 두 번째 문제는 2019년 말의 경제 상황이 실제로 얼마나 좋았든지 간에 2020년으로 접어든 이후 완전히 무너졌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대리인들은 물론 그 자신도 유권자들에게 4년 전보다 경제형편이 나아졌느냐는 질문을 종종 던진다. 정확히 따져보면 대다수의 대답은 “Yes”여야 마땅하다. 4년 전 우리는 팬데믹 첫 해를 살고 있었다.

2020년 초, 많은 미국인들은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한 장보기 이외의 외출을 극도로 자제했다. 일부는 누군가 무책임하게 일러준 잘못된 정보 탓에 ‘라이졸’을 식료품 세척제로 사용했고, 생수와 화장지, 마스크를 확보하지 못해 발을 굴렀다. 경제봉쇄조치로 실업률은 대공황 이후 최고수준을 찍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코비드에 걸린 환자들이 매일 수천 명씩 숨진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팬데믹 초기의 몇 달을 허비했다. 코비드의 무서운 확산 세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바이러스가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 반면 정부의 위기대응력을 한껏 부풀렸다. 대통령의 귀를 사로잡은 ‘전문가’ 자문단은 사이비 과학을 제공함으로써 트럼프가 잘못된 전망을 내리는데 기여했다. 트럼프는 TV 카메라 앞에서 표백제와 자외선 등을 이용한 비과학적이고도 위험한 코비드 치료법을 제시했고, 대통령의 ‘민간요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일부 충직한 지지자들은 자신은 물론 가까운 주변인들의 건강과 생명에 심각한 해를 입혔다. 트럼프의 그릇된 위기대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불충’한 블루스테이트 주지사들에게 연방 긴급지원금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재정위기를 막기 위한 연방준비제도의 움직임에 개입하려 들었다.


여기에 보태 그는 합법적인 이민제도까지 뒤흔들어 놓았다. 특정 인종집단을 겨냥한 노골적인 입국금지조치, 외국태생 간호사들과 다른 의료전문가들의 입국을 어렵게 만드는 여행 제한, 특히 이민자들은 물론 이민담당 기관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관료주의적 정책 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 결과 취업허가를 비롯한 이민관련 서류 처리작업이 지연되면서 노동력부족 사태가 빚어졌고, 경제활동 봉쇄조치가 해제되자 곧바로 인플레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결과의 모든 책임은 설거지를 떠맡은 바이든에게 돌아갔다.

반면 바이든은 취임과 동시에 트럼프의 이민정책 뒤집기에 나섰고, 그가 취한 신속한 조치는 예상을 뛰어넘는 최근의 고용성장과 인플레 진정으로 연결됐다.

팬데믹 동안 트럼프 행정부가 제대로 한 일이라곤 ‘와프 스피드 작전’을 통해 백신개발을 가속화한 것뿐이다. 그 이후 지지자들이 코비드 백신을 거부하자 트럼프는 홍역 발병 건수가 증가세를 보이는 와중에 광범위한 반 백신 운동에 합류했다. 그가 재집권하고 또 한 차례 국가적 위기상황이 발생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감케 하는 불길한 사례다. 설령 공중보건과 관련된 위기상황이 아니더라도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최우선 순위로 삼는 대통령의 대응 방향과 방식이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팬데믹 자체가 트럼프 탓인가? 전혀 아니다. 어떤 대통령이건 임기 중 거대한 충격을 동반하는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대통령의 진정한 지도력은 어려운 상황에서 그 충격을 어떻게 해소하느냐로 평가된다. 국가적 위기는 지도자의 능력과 자질을 검증하는 테스트인 셈이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 모두가 그의 임기 말년에 대한 채점 결과를 외면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캐서린 램펠은 주로 공공정책, 이민과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다. 자료에 기반한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램펠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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