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만사] 인생은 평생 학생

2024-04-02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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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교에 정말 오래 다녔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신학대학, 한국과 미국의 대학원 두 곳에서 신학과 교육학 석사와 목회학 박사까지 대학원 세곳을 다니며 공부했다. 모두 20년동안 학교생활을 한 폭이다. 결국 평범한 목사로서 평생 살 것을 왜 그렇게 많은 학교를 다녔는지 나 자신 이해가 안가지만 내가 좋아서 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

배우는 것은 비단 학교뿐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배우는 것이 많다. 일본 동경에 갔을 때 친구와 함께 교회에 출석하였다. 오래된 작은교회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되어있는데 한 노인이 신발을 신발장에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었다. 내 친구가 귀속말로 전하였다. “저 분이 현 정부의 체신부 장관일세” 나는 놀라서 그 노인을 다시 쳐다보았다. 매우 겸손한 낯이다. 나는 그날 목사의 설교보다 그 노인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왔다.

시인 괴테는 “가장 유능한 사람은 계속해서 배우는 사람이다”고 하였다. 사람이 태어나면 어머니의 무릎에서부터 시작하여 평생 배운다. 인간의 생애는 배우는 생애라고 할 수 있다. 배우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장래가 밝다. 그리고 배운다는 자체가 어떻게 생각하면 즐거운 일일 수도 있다. 발전이란 곧 배우는 것을 말한다.
일본인들은 계속적인 전쟁을 위하여 징병제도를 철저히 시행하였으나 학교 교사들은 징집하지 않았다.


교육이 도 중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일제시대 사범학교에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 였다. 내가 해주 사범학교에 입학 되었을때 어머니는 떡을 해서 온 동네에 돌렸을 정도였다.

공자는 “두 세 사람이 길을 걸으면 그 중에는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하셨다. 배우려는 정신이 있으면 어디에나 스승이 있다는 교훈이다. 스승은 학교 선생 뿐이 아니다. 모든 이웃이 스승이 될수 있다.

일상생활을 통하여 배우는 것이 생활공부, 학교와 책에서 배우는 것이 지식공부, 수양이나 교회 혹은 사찰에서 배우는 것이 마음공부이다. 사사건건 가르치려는 사람은 발전이 없다. 배우려는 사람이 발전한다. 종교를 구원을 위한 행위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 정신공부의 기회인 것이다. 그래서 종교마다 경전이 있어 경전공부를 장려한다.

하나님이 모든 인간에게 부착시킨 스승이 있다. 바로 양심이다.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있는 사람도 양심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인간이 양심의 지시대로 행동하거나 선택하며 살지 않는데 있는 것이다.

초행길을 갈 적에 비겁한 자는 “이 길이 안전합니까”하고 묻는다. 허영이 많은 사람은 “이 길이 영광을 얻을수 있는 길 입니까”하고 묻는다. 욕심쟁이는 “이 길이 돈을 많이 벌수 있는 길 입니까”하고 묻는다. 그러나 양심대로 사는 사람은 “이 길이 바른 길 입니까”하고 묻는다.

내 성격이 거칠어도 양심의 지시를 따르려고 노력해야 한다. 장사를 해도 양심껏 장사를 해야한다고 결심해야 한다. 정치를 해도 양심을 어겨서는 안된다. 양심의 지시가 곧 하늘의 지시인 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양심을 따라 살면 날마다가 크리스마스이다”라고 하였다. 바다보다 더 넓은 것이 하늘, 하늘보다 더 높은 것이 양심이다. 양심은 빛의 보고(寶庫), 양심을 따라 살면 빛 속을 살수 있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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