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가 트럼프에게 5억 달러를 빌려주랴

2024-03-27 (수)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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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에게 5억 달러에 가까운 법원공탁금을 빌려줄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생각해보라. 당신이라면 빌려주겠는가?

지난 수개월 동안, 숱한 불법혐의로 각종 송사에 휘말린 전임 대통령이 거액의 법률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거액’은 트럼프의 황금색 한정판 운동화 판매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액수다. 지금까지 벌금과 보석금 등 일련의 재판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은 몇몇 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합산액을 웃돈다.

지금까지 나온 가장 무거운 메가톤급 ‘벌금 폭탄’은 트럼프와 그의 일가족이 운영하는 트럼프 그룹이 더 나은 조건의 은행대출을 받기위해 자산 가치를 부풀렸다며 뉴욕 맨해튼지방법원이 부과한 4억 5,400만달러다. 트럼프는 뉴욕주 검찰총장이 제기한 소송의 1심 판결에 불복, 항소할 예정이다. 그러나 뉴욕 맨해튼지방법원의 아서 엔고론 판사는 트럼프에게 현금이나 보석보증금을 법원에 공탁해 단지 벌금납부 지연 목적으로 항소절차를 밟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라고 명령했다. 항소심 청구에 앞서 보석보증금부터 내야 한다는 뜻이다.


‘돈 자랑’을 일삼는 트럼프는 지난해 증언녹취 과정에서 “4억 달러 이상의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으스댔다. 하지만 지금 그는 법원에 공탁할 돈을 마련하지 못해 애를 끓인다. ‘벌금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그는 몇 가지 해법을 내놓았다. 첫 번째 방안은 보석금 흥정이다. 트럼프 변호인단은 법원에 보석금을 1억달러로 하향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트럼프다운 요청이다. 재임 시 백악관에 송부된 모든 법안을 최종안이 아닌 흥정안으로 받아들였듯 법원의 판결까지 흥정 가능한 제안 정도로 보았다는 뜻이다.

물론 판사의 대답은 “No”였다.

그러자 트럼프 변호인단은 지난 월요일 다시 판사를 찾아가 “피고 대신 보석보증금을 공탁할만한 보증인을 찾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트럼프 진영이 고용한 보석알선 전문업체는 “시장의 모든 주요 보증사와 일일이 접촉했고, 세계 굴지의 보험사들과 장시간 흥정을 벌였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트럼프는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을 담보로 보석금을 마련하려 했지만 주요 보증사들은 이같은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다.

독자의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요약을 해보자. 트럼프는 자산가치 조작을 통한 대출사기로 막대한 부정이익을 챙겼고, 이로 인해 천문학적 액수의 벌금을 지불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한껏 부풀린 그의 자산을 담보로 잡고 보석보증금을 대납해주겠다는 보증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누군가 유리 반지를 진짜 다이아몬드 반지라고 속여 팔았다고 가정해보자. 후일 판사가 이를 사기행위로 판단하자 이번에는 보석금 마련을 위해 가짜 ‘다이아몬드 반지’를 담보로 사용하려한다. 트럼프도 매한가지다. 그야말로 뻔뻔스러움의 극치다.

보석 채권사들이 트럼프의 부동산을 담보로 잡기를 꺼리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트럼프의 부동산 자산은 이미 이중삼중의 근저당이 설정된 상태다. 당연히 보석 채권사들은 후순위 담보권자가 돨 수밖에 없고, 담보권 행사를 통해 빌려준 돈을 변제받기 힘들어진다.

또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5억 달러에 가까운 거액을 한꺼번에 공탁할 단일 보석보증사가 없다는 점이다. 결국 여러 보증사가 보석금을 조금씩 나누어 공탁함으로써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 변호인단이 제출한 선서진술서에 따르면 이같은 제안에 응한 보증사는 단 한 곳도 없다.


설사 트럼프의 담보물에 전혀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그와의 금전 거래는 신경쇠약을 불러오기 십상이다. 트럼프의 채무변제 기록은 채권자들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트럼프 소유의 카지노가 고용한 캐비넷 설치 업체는 공사대금을 받지 못했다. 그의 마천루 건설을 위해 대출해준 대형 은행들 역시 큰 손실을 입었다. 실제로 트럼프는 대금 지급을 하지 않은 것을 자랑스레 떠벌린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모든 청구서와, 심지어 자신이 서명한 계약서마저 이제부터 흥정을 시작하자는 제안처럼 취급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당신에게 수백만 달러를 빌린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상상해보자. 이 경우 그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빚을 받으려 들었다간 크게 다칠 수 있다. 트럼프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대법원, 연방 재무부와 국세청 등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채권자의 급소를 물고 늘어질 것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대통령 재임 시 그가 똑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공권력을 무기처럼 사용했다. 예컨대 트럼프 행정부는 연료 효율성 기준을 지지하지 않는 자동차 사들을 반독점법 위반혐의로 조사했다. 물론 전혀 근거 없는 ‘손봐주기’다. 그의 전 비서실장이었던 존 F. 켈리는 선서 진술서에서 트럼프가 국세청에 지시해 자신이 적으로 여기는 인물들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하려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트럼프 본인이 직접 (TV에 출연해) “재집권할 경우 법집행기구를 동원해 정적 단속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가 알아두면 좋을 흥미로운 법치의 원칙이 있다. 법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준법의지를 보이지 않는 자와는 거래를 하지 않는다.

캐서린 램펠은 주로 공공정책, 이민과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다. 자료에 기반한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램펠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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