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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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에서

2024-03-25 (월) 조광렬 뿌리와 샘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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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두꺼운 외투의 내피를 걷어내는 홀가분함과 외투를 입을까말까 하는 주저함이 어우러져 갈팡질팡하게 한다. 이런 변덕스런 날씨가 봄을 더욱 기다리게 한다. 봄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봄을 기다린다.

아직 천지는 여전히 갈색이지만 땅에 귀를 바짝 대고 두 눈을 꼭 감으면 땅속 깊숙이서 녹색 기운이 꿈틀대는 소리가 들린다. 봄은 죽은 듯이 잠자던 풀과 나무, 개구리와 벌레들이 기지개를 켜고, 새싹이 솟아나는 계절이다. 봄은 영어로 ‘Spring’이다. 용수철을 뜻하는 단어와 같다. Spring이란 단어에는 ‘활력, 튀어 오름, 솟아오르다’와 같은 뜻도 있다. 그래서 봄은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게 하고, 가슴마저 부풀게 한다.

이 나이에 봄이 온다고 신이 날 일도 없다. 잔 주름진 아내의 얼굴이 새색시 얼굴처럼 화사해지는 것도 아니요, 어느 한 가지 내세울 것 없는 늙은이에게 더덩실 춤출 일이 벌어질 것도 아닌데도 기다려지는 게 봄이다. 한두 해 맞이하는 봄도 아닌데 정해놓은 혼사 날 기다리는 처녀 총각의 설렘처럼 봄을 기다린다.


봄을 봄답게 맞이하려면 무엇보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마음에 기쁨이 있고, 기다리는 사람, 바라는 바가 있어야 봄의 기쁨, 봄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외로운 마음의 신음, 우울, 무기력으로 희망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열정도 없다면 봄이 온들 어이 그 기쁨을 누릴 수 있으랴?

내가 기다리는 것은 마음의 봄이다. 나의 마음의 기쁨이 뿌리를 박고 푸른 하늘을 향하여 자유로이 움(萌)을 뿜고 자엽(子葉)을 품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마음의 르네상스이다. 봄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시간, 어느 병실에서 또는 어느 감옥에서 육신이 건강하지도 자유롭지도 못해 봄을 기쁘게 맞이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이를 생각하며 앞으로 몇 번이나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봄을 내 인생에 다시 한 번 허락하심에 하늘에 감사드리며 겸손과 기쁨으로 소중히 맞이해야겠다.

마침내 봄이 솟아났다. 움츠렸던 내 마음도 새롭게 솟아나야겠다. 나도 그렇게 굳세게 일어서서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다가가 봄이 되어주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 하리라.

<조광렬 뿌리와 샘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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