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터미네이터가 현실로”…글로벌 빅테크, AI 로봇에 올인

2024-03-20 (수) 박민주·김경택 기자, 실리콘밸리=윤민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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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아오른 휴머노이드 경쟁

▶ AI 두뇌, 스스로 학습·진화
▶엔비디아·현대차그룹 등 참전
▶테슬라 ‘옵티머스’ 대량생산 앞둬
▶“한국, 투자 늘려 기술격차 좁혀야”

“미래에 움직이는 모든 것이 로봇이 됩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18일 미국 새너제이 SAP센터에서 가진 기조연설에서 로봇 사업에 대한 청사진을 소개하자 그의 등 뒤로 휴머노이드 로봇 이미지가 등장했다. 사람을 똑 닮은 이 로봇들은 엔비디아가 그리는 AI 사업의 종착지다. 무대에는 엔비디아가 생성형 AI를 이용해 훈련시킨 두 대의 로봇도 등장했다. 이 로봇은 황 CEO의 말을 반려동물처럼 알아듣고 행동해 놀라움을 줬다.

AI 로봇을 둘러싼 글로벌 빅테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두뇌를 장착한 휴머노이드가 인간 대신 육체노동에 투입되고 대량 양산으로 인구 감소에 대응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넥스트MSC에 따르면 전 세계 AI 로봇 시장은 2021년 956억 달러에서 2030년 1,848억 달러로 연평균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엔비디아도 참전… 두뇌 장착한 휴머노이드

엔비디아가 본격적으로 로봇 사업 확대에 나선 것은 로봇이 AI라는 강력한 두뇌를 달면서 영화 속 터미네이터가 현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사람과 완전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공개돼 충격을 안겼던 피규어AI의 휴머노이드 로봇 ‘피규어01’이 대표적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단순 동작만 하던 피규어01이 급성장한 것은 오픈AI의 AI 모델을 탑재하면서다.

이전까지 로봇은 일일이 명령어를 입력하고 동작 하나하나를 학습시켜야 했다. 하지만 AI의 등장은 로봇의 학습 체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로봇이 스스로 학습하고 응용 능력을 갖추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임상덕 한국로봇산업협회 정책팀장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활용도가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라며 “글로벌 제조기업들이 앞다퉈 휴머노이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엔비디아가 휴머노이드 로봇을 중심으로 로봇 사업의 청사진을 보여준 배경에도 로봇 두뇌가 될 AI 분야의 최강자라는 자신감이 있어서다. 엔비디아 관계자는 “결국 AI의 마지막 단계는 로봇이다. 이를 구현하려면 강력한 하드웨어도 있어야 하고 오늘 발표한 NIM(여러 마이크로한 AI 서비스를 모아 하나의 레고 블록처럼 붙인 엔비디아의 서비스) 서비스들까지 엮어야 한다”며 “하드웨어와 서비스가 모두 합쳐진 로봇을 미래 방향성으로 제시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무주공산 AI 로봇, 선점 나선 글로벌 빅테크

휴머노이드 로봇에 필요한 기술 수준이 빠르게 향상되면서 시장 선점을 위한 글로벌 빅테크들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이 분야의 선두 기업으로 꼽히는 테슬라는 2022년 휴머노이드 ‘옵티머스’를 공개한 이후 이전보다 10㎏ 가볍고 보행속도가 30% 빨라진 2세대 모델까지 발표했다. 테슬라는 3년 안에 이 로봇을 공장 부품 운반에 도입하고 5년 안에 2만 달러 이하로 대량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어질리티로보틱스는 휴머노이드 로봇 ‘디짓’을 아마존 물류센터에 투입했다. 디짓은 구석에 있는 물건을 집어서 제 위치로 옮기는 일을 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자회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도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선보였다. 이 로봇은 물건의 모양을 감지해 두 손으로 집어들 수 있다.


중국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휴머노이드 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MIIT)는 2025년까지 휴머노이드 로봇을 대량생산하고 2027년에는 최고 수준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뒤처지는 K로봇…“대기업 적극 뛰어들어야”

앞서가는 미국과 빠르게 추격하는 중국과 달리 국내 휴머노이드 로봇 투자는 미미한 수준이다. 투자의 갭이 벌어지면서 오히려 산업용 로봇과 달리 AI 로봇에서는 뒤처지는 모양새다. 한재권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피규어AI 등 당장 돈이 안 되는 휴머노이드라도 민관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며 “사실 로봇 기술에서 선진국과 큰 차이가 없던 우리나라가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 기술 격차가 커지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국내 로봇 산업은 산업용 로봇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삼성전자가 투자한 레인보우로보틱스가 휴보2를 내놓았지만 미국과 중국 기업만큼의 성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한 교수는 “국내 휴머노이드 관련 가장 큰 문제는 연구가 끊긴 것”이라며 “국내 AI 기술이 뒤처진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정부와 투자자들의 적극적 협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민주·김경택 기자, 실리콘밸리=윤민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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