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씨스뿜빠!

2024-03-16 (토) 김덕환 팔로알토 갤럭시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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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스뿜빠!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어렴풋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은 무척 많을 것이다.

이 소리는 하버드와 미국 최우수 대학교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뉴저지의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19세기 중후반 경기 응원구호로 부르던 함성이었다고 한다. ‘씨스 SIS’는 폭죽이 날아가는 소리이고 ‘뿜 BOOM’은 폭죽이 터지는 소리요, 그걸 보고 고무된 사람들의 와~ 하는 함성소리인 ‘빠 BAR’를 합친 단어라 하는데 순우리말로 하면 ‘피융, 쾅, 우와~’하는 소리가 되겠다.

자, 이제 연결해보자.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노래하고 노래하고 다시 합시다’ 이 노래는 아무래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1883년 설립된 원산학사에 이어 3년 뒤인 1886년 프린스턴 대학을 나온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가 중구 정동에 설립한 우리나라의 사상 두번째 근대식 중등 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의 교가이다. 아펜젤러 목사가 자신의 모교 응원구호를 차용해 배재학당 교가의 후렴구로 붙인 ‘씨스뿜빠’는 나같이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무언가 박진감이 넘치는 신나는 소리인 것이 틀림없다.


배재학당은 10여년 전 고인이 되신 나보다 열살이나 많은 둘째 형님이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다닌 학교였는데, 세상물정을 알리가 없는 유년기에도 나는 형님이 카키색 멋진 교복을 다려입고 학교에 가던 것과 무슨 자리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를 친구들과 열심히 부르던 기억이 난다.

우리 집안의 가족사를 회고해볼 때에도 배재학당은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로 전해져온다. 일본서 국민학교 교사로 일하시다 24세 때인 1945년 해방을 맞아 귀국선을 타고 부산에 도착한 아버님은 영어가 되는 소수의 한국인 중의 한사람으로 미군정으로부터 군수물자 운수사업을 맡아 한 20년간 큰 부자로 사셨다. 하지만 사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선비처럼 온화한 성격 탓에 결국 사업에 실패한 뒤 부모님은 서울의 변두리인 돈암동 산동네 초라한 초가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배재고 신입생이었던 둘째형은 극심한 가정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무단가출을 감행해 부산 보수동의 2층 양옥집 부잣집 딸이었던 동갑나기 여자친구를 만나러 부산으로 내려가 버렸다. 자칫 퇴학당할 뻔한 위기를 38세의 어머니가 갓난 막내 동생을 포대기로 업고 롤케익 하나를 들고 학교를 방문해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 간신히 퇴학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형님의 파피러브 상대였던 보수동 자매 분들은 기가 막힌 우연인지 이곳 오클랜드로 이민와 살고 계시는 오랜 한국일보 독자들이었는데 연전에 게재된 나의 에세이를 보고는 연락을 해오셔 타계한 형 대신 반갑게 나와 해후했던 놀라운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배재학당은 오늘날 번영된 자유 대한민국을 키워낸 굵직한 큰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 우선 요즘 한국영화계에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의 주인공인 우남 이승만 초대대통령이 있다. 또 한명의 굵직한 배재출신 인사로는 한국현대 외교사의 지축을 뒤흔든 대사건, 1976년 코리아게이트의 주인공 박동선씨가 있다. 조지타운 대학교를 졸업한 사업가로 41세의 뉴욕 한남체인의 회장이었던 그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돕기 위해 미국 유력정치인들에게 뇌물을 공여하고 회유공작을 펼친 혐의로 미국 하원 윤리위원회의 서면 조사를 받는 등 한미 외교사에 지울 수 없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한국 현대사의 핵심 인물 중의 한사람이었다. 벌써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88세로 생존해 계시다고 한다. 아무쪼록 나라를 위한 그분의 헌신과 고초를 생각하면서 만수무강을 빌어드린다. 씨스뿜빠,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김덕환 팔로알토 갤럭시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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