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싱 열풍

2024-03-01 (금)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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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 뉴욕에서 30년 이상 살다가 한국으로 역이민한 손위 친척이 한 달동안 우리집에 머물다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뉴욕에 도착한 다음날로 발 병원을 갔는데 그의 발등이 완전 굽어져 이상하게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지난 2~3년 동안 해변 모래사장, 산속, 숲길, 나중에는 제주도의 돌 위까지 쉴 새 없이 걸었다고 했다. 결국 뉴욕의 발 병원 진단 결과 수술도 힘들고 해서 신발 속에 특수 깔창을 주문해서 한국으로 갖고 가야했다. 그는 화산석의 울퉁불퉁하고 거친 표면을 오랫동안 맨발로 걸어 다녀서 발에 기형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겨울철인 지금도 공원 비닐하우스 안에 조성된 맨발 황톳길에서 어싱(earthing·맨발걷기)을 즐기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걷고 있는 한국 TV 영상을 본다. 겨울이다 보니 사람들은 발가락을 감싸 보온성을 높이고 발바닥이 뚫린 어싱 전용 양말을 신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수년 전부터 맨발 걷기 열풍이 뜨겁다. 일상의 감기부터 다이어트, 암, 심혈관, 뇌질환, 고혈압, 아토피, 치매, 코로나19 등등 맨발 걷기로 병을 고친 환자들의 사례가 소개되면서였다. 현재 서울의 북한산, 관악산, 대모산은 물론 경기도, 경남, 제주도 한라산에서도 사람들은 맨발로 걷고 있다.

전국 각지의 지자체들이 앞 다퉈 황톳길을 조성했고 바닷가 모래사장, 해변, 잔디밭, 자갈밭 등등 어디에나 어싱 구역을 만든 것이다. 겨울인 지금도 신발 신은 사람보다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라고 한다.

겨울철 맨발 걷기는 발을 추운 환경에 노출해 우리 몸이 건강한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것이다. 즉 면역력을 강화하고 또 건강 장수에 도움이 되는 이 운동의 주의점은 발을 제외한 나머지 부위는 장갑, 모자, 목도리, 점퍼 등으로 최대한 따뜻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이와 관련, 한국의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회장 박동창)’와 미 동부지역에서 미국 한의사를 양성하고 있는 버지니아 통합의학대학원(이사장 김제인)이 지난해 12월28일 업무 협정을 맺었다. 맨발걷기운동을 한국과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 확산시킴으로써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공동으로 협력하자는 것이다. 양 기관은 맨발걷기운동의 치유효과에 대한 공동학술연구 추진, 한의학통합의학대학(원) 맨발걷기 학 특별강좌를 개설하고 4월경에는 맨발걷기 국제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머잖아 본격적인 봄이 오면 따스한 햇살 아래 공원이나 잔디밭을 맨발로 걷는 뉴욕 한인들이 있을 것이다. 숲속에서 흙과 작은 자갈 위를 맨발로 걸으면 신체의 모든 감각기관이 자극을 받아 불안감과 우울감을 완화시킬 것 같긴 하다. 맑은 공기에 햇볕이 주는 행복 호르몬 세르토닌, 흙속의 지오스민은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처럼 심리적 효과도 줄 것이다.

그런데 의학 전문가에 의하면 맨발로 걸으면 발바닥에 자극이 커져 마사지 효과는 있겠으나 나뭇조각이나 나뭇가지 등이 발에 박힐 수 있으며 특히 당뇨환자는 발에 난 작은 상처에 세균이 침투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전한다. 이번에 손위 친척의 기형 발을 직접 보고 겨울철 해변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의 한국 뉴스 영상을 보면서 땅 밑의 생명이 생각났다.

모래사장 백합조개, 비단고둥, 성게, 게 등 수많은 해양생물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몸무게가 모두 실린 발바닥의 지속된 압력으로 숨이 막히고 종내 사라지지 않을까? 실제로 이들의 개체수가 엄청나게 줄어들어 조개 등의 수확량이 보통의 반도 못 미칠 뿐 아니라 자연생태계에 변화를 준다고 한다.

숲속 황톳길이나 자갈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땅 밑에는 땅강아지, 곤충, 애벌레, 개미 등이 있고 다양한 종류의 씨앗들이 있다. 언젠가는 굳은 땅이나 돌 틈을 뚫고 나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많은 생명들, 생명이 움틀 단 한 번의 기회를 잃은 채 사라져 갈 것이다.

인간이 오래 살고자 다른 생명의 목숨을 끊어버려도 되는 것인지, 자연의 모든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이라기보다는 아무리 몸에 좋다는 운동도 적당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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