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형무 칼럼] 돈은 더러운가

2024-02-22 (목) 최형무/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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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의 2017년 보도에 따르면 뉴욕시에서 통용되는 1달러짜리 지폐를 연구자들이 조사한 결과 수백 종 이상의 박테리아와 미생물들이 돈에 붙어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돈이 무수한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온갖 박테리아를 묻혀와서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돈의 외형에 얼마만한 균이 서식하느냐의 문제이지만, 그렇다면 관념적인 돈은 더러운 것일까? 만약 돈이 더러운 것이라면 멀리 해야 하고, 깨끗하고 좋은 것이라면 가까이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종교인들이나 사상가들이 돈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해서는 청빈론에 입각한 생각이 있고,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것이라는 생각, 또는 잘 벌어 잘 쓰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라는 입장 등이 있다.

돈을 잘 벌어 잘 쓰는 분들 중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 억만장자 빌 게이츠가 알려져 있다. 이 분은 자선 재단을 출연하여, 세계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인류 전체에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해서 귀감이 되고 있다. 한편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억만장자 워렌 버핏도 수십년 전부터 살던 작은 집에 살고 오래된 차를 굴리면서, 거액을 남을 돕는 사업에 흔쾌히 기부해서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돈은 그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다. 돈에 아무리 많은 균이 붙어 있어도 많기만 하면 좋은 것이다.
미국의 시민 생활이나 정치 생활에서 돈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우선 미국에서 정치인으로 진출하려면 돈이 있거나 돈 많은 사람의 지원을 받거나 아니면 대중의 폭넓은 지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왜냐하면, 미국의 선거제도는, 영국과 달리, 선거 자금에 대한 공영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거공영제가 시행되는 나라에서는 학교 교사라든가 경찰관이라든가 하는 평범한 중산층의 사람들이 선거에 나서 국민의 대표자로 국정에 참여하기가 상대적으로 덜 힘들다. 반면 그렇지 않은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백만장자나 억만장자가 아니면 현실적으로 힘들다. 실제로 미 연방의원들의 과반수는 백만장자 또는 그 이상의 부를 가진 사람들이다.

환경, 총기 규제, 의약 정책 등등 미국의 중요한 분야 정책 결정에서 부를 기반으로 하는 인더스트리의 입장이 과도하게 반영되어 온 데 대해서 많은 분석가들이 깊히 우려하고 있다.

환경문제만 해도, 이미 수십년 전부터 과학자들이 화석 연료의 사용으로 이산화탄소가 대기층에 축적됨으로 심각한 기후 변화를 야기한다는 움직일 수 없는 근거를 제시해 왔다. 그러나, 석유 업계에서 온갖 자금을 동원해서 역정보를 공급하고 자신들의 사업에 불리한 법 정책 제정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다.

지금 지구 온난화로 돌이킬 수 없는 위기 상황이 될 것을 과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우려하고 있다. 매년 수억 톤의 빙하가 녹아내려 해면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고 미국에서 이미 해안 지역 부동산에 침식 현상이 시작되었다. 과거에 비해 훨씬 격렬한 폭풍, 폭우, 토네이도, 침수, 산불들이 반복되어 일어나고 있다.

한편, 미국의 일부 제약업체가 마약류 진통제를 조직적으로 대량 공급하여, 2021년만 해도 1만 7,000 명이 과다 복용으로 미국에서 사망했다고 하는데, 이것도 기업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매우 무분별한 행동이었다. 회사가 이윤을 창출하면 주주들에 이익이 돌아가고, 고위직 회사 임원들은 엄청난 보수를 받는다.

미국민의 85~90퍼센트가 합리적인 총기 규제를 지지하는 것은 매년 수만 명이 총기 사건과 사고로 사망하기 때문이다. 총기 제조 산업과 전국총기협회와 같은 로비 단체들이 총력을 다해 이를 반대하는 것은 금전적 이익 창출을 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미 정치인들은 총기 인더스트리의 막강한 힘 때문에 이 분야에서 의미있는 정책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유명한 퇴임 연설에서 군산복합체의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 전쟁에는 여러 이유가 있고, 어떤 경우는 악에 맞서 반드시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있다. 2차 대전에서 나치와 인간 말살 전체주의와 맞서 싸워 이긴 것은 역사가 요구하던 일이었다. 이 대전에서 유럽 동맹군 총사령관으로 별 다섯 개의 원수로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그가 군산복합체의 위험을 경고했다. 관련 인더스트리의 과도한 힘 편중에 대해 경고한 것이다.

<최형무/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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