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만사] 살인자의 주례자

2024-02-20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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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70년대초에 이민와서 커네티컷주 하트포드에서 교회를 개척하였다. 그당시 하트포드 제일감리교회 담임자는 월터 에버렛 목사였는데 그 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외아들이 어떤 사람과 말다툼을 하다가 그 사람의 권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살인자 마이크 카루치군이 교도소에 들어가 몇 해가 지난 후 갑자기 에버렛 목사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예수의 제자라면 한 청년을 교도소에서 죽일 것이 아니라 그를 개선시켜 좋은 인간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닌가? ”

에버렛 목사의 간청을 듣고 교도소에서도 감격하여 살인자에게 특사를 내렸으며 목사는 그를 아들로 입양하였다. 그리고 자기 교회에서 참한 며느리감을 골라 결혼시켰다. 에버렛 목사는 살인자의 주례자가 된 것이다. 네 원수도 사랑하라는 예수의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화는 누구나 자주 경험하는 감정이다. 불붙는 화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리기도 한다.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피로의 3애 요인을 말한다.
걱정과 긴장과 화이다. 화내는 것은 신체건강에도 나쁘고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다.

화를 낸 뒤에는 온몸에서 기운이 빠진 느낌을 갖는다. 왜냐하면 화는 두 번째 감정이기 때문이다. 화란 이미 가졌던 어떤 감정을 은폐하려는 마음이므로 피로하지 않을 수 없다.

화내기 전에 이미 부끄러움이나 실망이나 좌절, 쇼크나 걱정 등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이다. 영어로 화는 ‘ Anger ’인데 그 앞에 d만 붙이면 danger 곧 위험이 된다. 화에 뒤따르는 것이 위험이라는 뜻이다.

세월이 갈수록 사람들은 화를 더 잘 내는 것같다. 옛날에는 기차를 놓쳐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회전문(Revoling door) 한 칸만 놓쳐도 신경질을 부린다. 기다리는 인내심이 떨어진 것이다.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을 상자 속에 가두는 것과 같다. 화를 낼수록 점점 더 자기자신만 답답해지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화도 일종의 에너지인데 부정적으로 분출시키는 에너지이다. 기왕이면 에너지를 건설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히브리인의 옛 지혜에 “성급한 사람과 사귀지 말고 성을 잘 내는 사람과 함께 다니지 말아라. 네가 그 행위를 본받아서 그 올무에 걸려들까 염려된다. ” (구약잠언 22:24) 라는 말이 있다.

화 잘 내는 것도 전염성이 있으니까 손해를 안보려면 그런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하는 훈계이다.
뉴저지 주에서 엉뚱한 일이 벌어진 일이 있다.


수퍼볼을 집에서 보던 아빠가 두 살난 아이를 흔들어 죽였다. 엄마가 없는새 아이가 울기 시작하였다. 아빠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아이를 흔들었다. 아이가 의식을 잃고 병원에 가자마자 사망하였다. 수퍼볼에 열광한 아빠가 필요이상으로 아이를 흔든 것이다.

미국 프로 풋볼 역사에 30야드 벌칙을 먹은 일이 있다. 공격적 행위를 범한 선수에 대하여 심판은 15야드 벌칙을 주었다. 이 선수가 심판에 대하여 화를 내자 심판은 15야드 더 추가시켜 모두 30야드 벌칙이 되었다.

심판이 점잖게 말하였다. “이만큼 떨어지면 아무 냄새도 안나겠군”. 아리송한 말이지만 결국 “너는 돼지다.” 란 말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화날 때 기도가 가장 잘된다.”고 말하였다. 화날 때 회개하는 것이 가장 많다는 뜻이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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