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다에 올리는 마음을 담아… “우리 민속 잘 기록하고 지켜야죠”

2024-02-18 (일) 03: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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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민속박물관, 마을 평안·풍어 기원하던 ‘거제수산별신굿’ 조사

▶ 전통 유지하지만 생업 변화 속에 일부 축소… “민속 향한 관심 중요”

바다에 올리는 마음을 담아… “우리 민속 잘 기록하고 지켜야죠”

지난 17일(한국시간) 경남 거제시 동부면 수산마을 일대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거제수산별신굿’이 열리고 있다. 사진은 용왕굿을 하러 선착장으로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갑진년 한 해 동안 온갖 나쁜 것은 막아주시고, 마을 사람들 모두 건강하게 하는 일 잘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지난 17일(한국시간) 오후 경남 거제시 동부면 수산마을 일대 선착장.

한 손에는 부채를, 또 다른 손에는 신대(神竿·신을 받는 대나무로 굿을 할 때 쓰는 무구)를 든 '대모님'이 바다의 용왕신을 향해 외쳤다.


바다 앞에는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이 상에 올려져 있었다. 주민들은 굿 돈을 건네고 올해 무탈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절히 바랐다.

그 모습을 놓칠세라 국립민속박물관의 정연학 학예연구관과 백민영 학예연구사는 사진을 찍고 현장을 기록했다. 굿이 벌어지는 판 곳곳을 누비는 그들은 '민속 조사' 중이었다.

정연학 학예연구관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어촌 마을에서는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며 마을제를 올려왔다. 수산마을은 마을 규모가 크지 않지만, 그 전통이 이어져 온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국가무형문화재인 남해안별신굿은 예부터 바닷가 마을에서 성대하게 치르던 행사 중 하나다.

거제도를 중심으로 통영 일대 어촌과 한산도, 사량도, 욕지도, 죽도 등에서 마을이 평안하고 어민들이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도록 비는 굿을 일컫는다.

다른 별신굿에 비해 화려하거나 볼거리가 많지는 않지만, 굿이 진지하고 오랜 전통을 이어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보통 2년에 한 번 열리는데 거제 수산마을에서는 큰 굿과 작은 굿으로 나눠 매년 행사를 열고 있다. 현재 마을에서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어선이 4척인 점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정 학예연구관은 "마을의 실거주자는 65명이지만 대부분은 펜션을 운영하는 터라 어업을 생계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도 별신굿 전통을 이어 계속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조사 배경을 설명했다.

2003년 거제도에서 한 차례 민속 조사를 했던 그는 "20년 전과 비교하면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며 "이제는 생업을 위한 공동제의보다는 문화 축제로 성격이 변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세월이 흐르면서 수산마을 별신굿의 많은 부분이 달라지거나 절차가 간소화됐다.

17일 오후 당산(堂山·수호신이 있다고 여겨 신성시하는 마을 근처의 산이나 언덕)에서 열린 당산굿에서는 마을 이장을 비롯한 주민, 행사 관계자 30여 명만 참석했다.

과거에는 무당 일행이 마을 입구를 지키는 장승, 마을의 주요한 원천인 우물 등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신령에게 인사했으나, 이제는 우물 대신 물탱크를 지나친다. 인근 구조라와 양화 마을에서 열리던 별신굿은 사라진 지 오래다.

김삼룡 수산마을 어촌계장은 "어린 시절에는 별신굿 할 때면 집마다 떡과 생선, 나물 등을 상에 차려 준비했는데 이제는 마을 차원에서 제사상 하나와 작은 상 6개만 차린다"고 전했다.

거제시와 거제문화원이 매년 300만원을 지원하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아 마을 차원에서 매번 200만원을 더 지원해 비용으로 쓰고 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백민영 학예연구사는 "마을 주민 대부분이 60∼70대라 젊은 세대가 많지 않다. 세월이 점차 흐르면서 수산마을 별신굿이 어떻게 변화할지도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점차 사라지는 민속 풍습과 마주하는 이들에게 아쉬움은 없을까.

두 사람은 "그렇기에 지금의 민속 조사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통문화와 민속의 맥을 이어오는 마을을 조사해 기록을 남김으로써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추가 연구·조사를 끌어낼 수 있다는 뜻에서다.

백 학예연구사는 "어린 시절 마을에서 함께 제사 지내던 문화를 기억하던 분이 은퇴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 자료를 조사하고 공부하는 사례도 많다. 실제로 사라졌던 마을제를 되살린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준비 중인 '한국의 마을 신앙' 경상도 편 보고서에 담길 예정이다.

"누군가는 민속학이나 민속 조사라 쉽지 않다며 걱정하기도 하지만 민속은 함부로 꺾이지 않습니다. 죽어가던 것도 마음만 있으면 살아납니다. 그러니 관심이 제일 중요하죠. " (정연학 학예연구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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