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화 전망대 세이지 오자와 타계

2024-02-16 (금)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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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망대  세이지 오자와 타계
클래식 음악계의 아이콘이자 80-90년대를 주름잡던 세계적인 지휘자 세이지 오자와가 지난 6일 88세로 타계했다. 보스턴 심포니를 무려 29년이나 지휘하며 음악성 뿐만 아니라 인품에 있어서도 지대한 리더십을 발휘했던 세이지 오자와는 동양계 지휘자라는 편견을 딛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의 계보를 잇는 이 시대의 마지막 별이기도 했다. 세이지 오자와는 1970년 35세의 나이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상임지위자로 발탁, 베이지역과도 인연이 깊은 지휘자였다. 이때 오자와는 1976년까지 활약하며 필립스 레코드 등을 통해 당시까지 레코드가 전무했던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음악을 전세계에 알리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1959년 프랑스의 브장송 국제지휘자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동양인으로서는 당시까지 유리천정이었던 지휘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세이지 오자와는 이때 부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의 눈에 들어 카라얀 밑에서 세계 지휘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초청으로 뉴욕 필의 부지휘자로 활약하기도 했던 오자와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를 지휘하던1973년, 미국의 ‘빅 5’ 의 하나인 보스턴 교향악단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사실상 그의 이력에 큰 획을 긋는 지휘자로 발돋움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클라우디오 아바도, 주빈 메타, 리카르도 무티 등과 함께 신세대 지휘자로서의 명성을 거머쥐게 된다. 세이지 오자와는 보수주의의 텃밭 보스턴 심포니에서 무려 30년가까이 군림하며 특유의 친화력과 리더십으로 존경받았고 카라얀이 사망한 뒤에는 베를린 필의 차기 지휘자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2천 년도에 들어서 보스턴을 떠난 오자와는 빈 필, 빈 국립오페라 등을 지휘하며 생애 마지막 불꽃을 태웠고1993년, 2004년, 2007년도에 빈 필과 빈 국립오페라단 등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세이지 오자와는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라는 격언을 몸소 실현한, 살아있는 전설이기도 했다. 세이지 오자와는 일본인이었지만 1935년 중국 선양(당시 만주 봉천)에서 태어났던 중국인이기도 했다. 유년기 7년을 만주에서 보낸 오자와는 지휘때면 늘 중국인 복장을 하고 지휘대에 서기 일쑤였고 그래서 그가 중국인인지 일본인지 그 출신을 의심받기도 했다. 1962년 일본 NHK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임명됐을 때는 서구적인 캐릭터 때문에 갈등을 빚었고 이로인해 지휘봉을 내려놓기도 했다. 오자와는 오히려 세계 속의 자유인 그리고 범동양인으로서 활보했으며 미국에 귀화한 것이 말해주듯 누가 뭐래도 미국인이었으며 세계인이었다. 서구인들의 눈에는 동양인, 한국인들의 눈에는 일본인, 일본인들의 눈에는 서구인이기도 했던 오자와는 브장송 콩쿠르, 버크셔 콩쿠르, 쿠세비츠키 콩쿠르, 카라얀 콩쿠르 등의 우승이 말해 주듯, 모든 편견을 딛고 지휘자로서 우뚝 섰던 한 시대의 진정한 별이자 거장이기도 하였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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