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형무 칼럼] 행정부 권한 존중의 범위

2024-02-08 (목) 최형무/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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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부가 법에 따른 규칙을 제정하는데 어느 정도의 권한을 인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얼핏 보기에는 그저 기술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라고 간과할 수 있다. 사실은 환경, 이민, 노동, 보건정책과 같이 나라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정책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다.

3권분립이 보장되는 민주주의에서 입법부 즉 의회는 법률 제정 권한을 갖고 행정부는 이를 시행하는 권한을 갖는다고 일반적으로 말한다. 그런데 의회가 정한 법률에 시행에 관한 모든 사항을 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의원들이 많은 보좌관들과 참모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유권자들에 도움이 되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법을 만들어간다고 하지만, 정부 각 부서에서 수년, 수십년간 한 분야에서 일해온 행정관료들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
법률에서 모든 시행세칙을 담을 수는 없기 때문에 행정부의 규칙내지 시행세칙에 따라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현재 미연방 대법원에 계류되어 있는 사건 중 행정법상 이른바 “쉐브론 존중원칙”이라고 하는 법 원칙을 정한 중요한 판례를 그대로 유지하느냐 아니면 이를 번복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결정이 이번 회기 중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쉐브론 존중원칙”은 1984년에 내려진 “쉐브론대자연자원보존위원회(Chevron U.S.A. Inc. v. 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 Inc.)” 사건에 대한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른 것으로 “의회가 법률을 제정할 때 직접적으로 구체적으로 정하지않은 문제에서 행정부의 법 해석이 불합리 하지않다면 이를 존중해야한다”는 원칙이다.

예를들어 의회가 이미 1963년에 공기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법률로 제정한 “대기청정법” (Clean Air Act)이나 1972년에 제정한 “수질청정법(Clean Water Act)”을 시행하는데 있어서, 어떤 유해물질이 법조문에 열거되어 있지않다고 해서 행정부 관계부서에서 이를 금지할 수 없다고 누가 주장한다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된 사건은 민간 어선에 승선하는 모니터들의 비용을 누가 지불하느냐의 문제이지만, 판결에 따라 정부기관이 관계되는 환경보호, 소비자보호, 총기규제, 이민문제 등등 온갖 이슈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큰 관심을 끌고있다.

만약 대법원이 “쉐브론 존중원칙”을 뒤짚는다면, 환경보호청(EPA)의 환경 보호 시행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법원이 어떤 법리적인 이론을 제시하더라도, 실제로는 미국민의 삶을 해치고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현실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때문에, 숨을 죽이고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법률 제정 권한이 의회에 있으니 의회가 시대상황에 맞게 법을 제정해나가면 되지않느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과학 지식 발전에 따라 새롭게 발견되는 유해물질이 나올 수 있고 그때 그때마다 이에따라 법을 계속 개정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미국과 같이 상하원 양원 제하에서는 법 하나 제정하기가 만만치않다. 각 의원마다 지지층이 달라 의견이 다를 수 있고, 하원과 상원을 다 통과하고 대통령이 서명해야 법이 제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미국 의회의 정치적 현실은 거의 “기능장애” 수준이라고 정치분석가들이 말한다. 매년 통과해야 하는 연방정부 예산안마저 통과시키지 못해 정부 부서가 문을 닫거나 닫을뻔한 상황이 생긴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금년에도 이미 2번 단기예산만 이루어져 3월초에 다시 논의해서 1년 예산을 통과시켜야 한다.)

상원의 경우 이른바 “필리버스터”라고 해서 100명 의원 중 60표 지지를 받지 못하면 법안 진행이 되지않는데, 어느 다른 나라 의회에서나 다 인정하는 단순 과반수 법안 통과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필리버스터는 아니지만, 상원의 다른 오래된 규칙에 따라, 지난해 앨라배마 출신 상원의원 한 명이 400여 명의 군 장성 진급과 인사를 거의 1년 가까이 가로막았던 일을 기억하실 것이다.)

이같은 현실에서 법에서 확실히 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정부기관에 합리적인 법 해석을 허용토록 하는 것이 필요한데, 보수단체들이 이를 반대하는 것은 “비즈니스를 돕기위해 엄격한 법 적용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있지만, 이른바 “정부 관료 음모론”에 따라 모든 정부 행정을 불신하는 극단적인 입장도 있다.

<최형무/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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