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 이색 편지

2024-02-07 (수) 한재홍/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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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녀석에게서 편지가 왔다. 잘 지내냐는 서두다. 정이 그리워 보고 싶다고 했다. 만나면 자주 쓰는 쌍욕도 들어있었다. 어린 시절의 따스함이 왈칵 느껴졌다. 얼마 만에 들어본 말투인가? 나도 모르게 보고 싶어 눈에서 이슬이 맺힌다.

우리들은 냇가에서 멱을 감으며 뛰어다녔던 불알친구들이다. 격이 없고 말소리만 들어도 곧장 달려오는 옛벗들이 아닌가! 지방마다 특색이 어린 말투를 생각하면 정이 묻어난다. 80 고개를 넘었는데도 말이다.

요사이 고국에서는 서초동 말투며 여의도 말투며 세종대왕이 혼란스러워할 말들이 오가고 있다. 작은 나라에서 또 찢어지는 소리다. 정치꾼들이 잠꼬대로 하는 헛소리로 치부하고 싶다. 그런데 말이다. ‘용산’이란 새로운 고유명사가 생겼다.


얼마 전만 해도 대통령이 계신 곳이 청와대로 통했는데 요사이는 ‘용산대통령실’이란 신성어가 생겼다.
용산이 있기 전에 이태원이란 곳이 있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592년 임진왜란 때에 주어진 새 이름이다.

왜놈들이 들어와 7년간 한양이 쑥대밭이 되었다. 정승들의 며느리, 딸들이 성적노리개감이 되어 질서가 깨어지고 더 나아가 씨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선조임금은 저들을 다 죽일 수도 없어 궁궐이 보이지 않는 남산기슭 남쪽에 자리를 잡아주며 배나무나 기르며 여생을 보내라 했다. 그때부터 외인들이 드나들게 된 곳이며 일제때 일본놈들이 자리를 잡게 되고 이어 미군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미군들에게 우편으로는 샌프란시스코란 우편번호를 가지게 되었다.

한국 땅이면서 한국이 아닌 치외 법권의 통치에 있는 곳이 용산 지역의 일부다.
실로 지역을 따지자면 이태원 원한을 풀어준 이순신 장군의 묘가 거기 있어야 했다. 명나라 진린 장군이 이순신 장군의 묘를 고향 아산에 모시지 않고 이태원에 모셨다면 역사의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그리고 선조는 왕위에서 내려와 이태원에 묻혀야 했다. 이순신 장군은 전사했지만 실제로는 자결한 것이다.
어차피 승자가 되어도 선조 앞에 끌려가 고문을 받다가 형틀의 이슬로 사라질 처지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비참한 역사의 한 단면이다. 그래 어떤 면에서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종로가 아니라 이태원에 세웠어야 역사의 의미가 깊다.

왜 좋은 청와대를 두고 용산으로 이전을 했을까? 풍수지리설이 있었다고 한다. 용산은 용이 솟아오른 의미를 담고 있단다. 국민과 더 밀접하게 관계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런데 소통은 고사하고 대화의 벽이 쌓이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어차피 옮겼으니 좋은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한 가지 덧붙여 제안을 하고 싶다. 그 넓은 땅에 많은 아파트를 만들어 둘 이상 아이를 낳은 가정에 공짜로 집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디서 바라보아도 대통령궁이 보이는 곳이 되면 희망을 주기도 하겠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결혼과 자녀관을 재고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인간은 과거를 돌아보며 새로운 내일을 설계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은 미래를 설계하게 하는 후예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미국의 한 학자가 한국을 돌아보며 비관스러운 답을 내놓았다. 세계에서 가장 미래가 어두운 나라라 진단을 내린 것이다.

한국의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고칠 것은 고쳐가야 한다. 이런 일은 정치지도자들이 앞장서야 한다.
대통령부터 내가 국립묘지에 묻힐 것인가 아니면 이태원 길모퉁이에 묻힐 것인가 하는 결단이 앞서야 할 것이다. 그만한 각오를 세우는 지도자를 보고 싶다.

<한재홍/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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