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프 안의 한국 기행 맛집 투어와 호캉스, 목적 없는 유랑체험
햇빛에 반짝이는 눈부신 바다와 기암괴석, 싱그러운 녹음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송도 해상 케이블카는 청량미 끝판왕이었다.
제주도 용두암 관광을 하기위해 줄을 서있는데 가이드가 숨차게 뛰어와서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떤 땐 한국은 정말 화나게 만들어요! 노년 관광객들이니까 디스카운트 달라고 했더니, 국내 노인들에게만 적용되고 미국노인들에게는 적용이 안된다네요.” 그녀는 영수증을 검문소에서 보여주고 우리들은 경내로 들어섰다. 화가 안 풀린 가이드에게 와이프가 말했다. “나는 그거 너무 이해해요. 한국에 세금도 안낸 외국인에게 왜 디스카운트를 줘야 해요.” 와이프는 눈치 없기로 유명하다.
그녀의 말에 가이드는 눈을 크게 뜨며 “어머, 아직 아무도 그런 말씀하신 분이 없었는데, 그러고보니 그렇네요. 이해해주시면 고맙고요”. 정말 그랬다. 고국을 여행하다 보니 한국은 노인 천국이었다. 65세 이상이면 전철, 버스, 관광지 관람이 모두 무료였다. 더구나 전철이나 버스에서 비어 가는 노인석이 많은데도 젊은이들은 서서 갔다.
경로사상이 이렇게 존재하는 나라는 세상에 한국뿐이다. 노인을 존경하는 것은 좋은 미덕이지만 공용으로 사용하는 사용비는 지불해야한다고 생각된다. 경제능력에 따라 지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하철에서 목격한 노인 무료 혜택으로 자신의 생활비라도 벌자고 일하는 수많은 노년 택배 배달부들을 보니 내 생각이 흔들렸다.
고향음식
서울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지낸 사람들의 공통점은 성인이 되어도 시골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고향에 대한 정서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추석과 명절이면 모두 고향으로 내려가는 귀향은 물론 고향음식, 고향 향기, 고향여인, 고향의 뒷산이 없다. 그래서 미국에서 인천공항에 도착한 후 다시 한번 고향길에 오르는 분들과 달리 서울에서 자란 난, 콘크리트와 유리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이 광대한 도시를 모두 내 고향이라고 말하기는 너무 버겁고 용산이라 말하자니 용산에는 옛 모습 하나 없다. 옛날 살던 집을 찾아갔는데 결국 못 찾았다. 천지개벽이 되어 있었다.
한국에 오기 전 내심 간직했던 욕심 중 하나가 소위 ‘맛집’ 탐방하며 그동안 못했던 한식에 대한 서러운 보답을 받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맛집이라는 것이 한국에서는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절실하게 느꼈다.
돈 많은 여수에서 맛본 명동게장
“순천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 벌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고, 여수 가서 돈 자랑하지 말라.” 오랫동안 남도 지방에서 전해지는 ‘썰’이라며 가이드가 말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여수 국가산업단지를 지나면서 한국산업의 눈부신 발전을 목격했다. 나는 거대한 공장 과 산업시설들을 보면 너무 가슴이 뿌듯해지고 기분이 좋았다. 나는 큰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기계와 굴뚝들을 좋아하는데 여수가 그런 모습이었다. 석유 한 방울 안 나오는 국가에서 세계 1위의 화학 단지라니 너무 감동이었고 돈이 많을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러나 여수란 ‘아름다운 물’이란 뜻인데 화학 단지라니…그래도 돈이 좋고 경제가 우선이다.
우리는 여수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를 건넌 뒤 유명하다는 명동게장 집으로 향했다. 게장을 즐기시는 분에게는 완전 천국이었다. 그만큼 양이 푸짐했고 특히 매콤한 장 소스 가 일품이었다. 싱싱한 국산 배로 만들기에 달콤하고 너무 맵지도 않았다. 단지 내가 먹었던 게장은 냉동되었던 것들인지 속살이 얼어서 나왔는데 ‘물컹’ 하며 나오는 것을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진주성과 진주냉면
다음 우리는 논개의 절개와 의기로 유명한 진주성으로 향했다. 구비구비 흐르는 남강 위에 화려한 등불과 배들이 보이고 진주성은 멋있게 보수된 모습이었다. 논개를 모신 의기사는 진주성 안에 아담하게 자리잡고있었다. 19살 꽃다운 나이에 죽다니… 그 앞에 서서 생각해보니 논개와 효녀 심청, 의절을 지킨 남원의 춘향 등 모두 호남여인들 아닌가. 절개 있는 호남여인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나에게 오늘 점심은 시원한 진주냉면이라고 알려준다.
우리나라 3대 냉면 하면 평양, 함흥, 진주냉면이라 하는데 진주냉면은 메밀국수에 저온에 숙성한 해물육수를 넣은 후 육전과 달걀 지단, 잘게 다진 백김치를 넣는 것이 특징이다. 진주 하연옥 본점은 진주냉면의 진가를 확인하는 매니아들의 메카라 불리는데 그 이유는 15일 숙성한 해물육수(죽방멸치, 홍합, 바지락, 문어, 표고버섯 등)의 깊은 육수 맛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소문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육전과 냉면의 양이 너무 육중해서 다 못 먹고 나왔다. 맛은 있었으나 진주냉면을 자주 접하지 못하는 데는 그 나름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똘똘이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미아가 되다
전라도 맛집들은 명성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었다. 다음 우리는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은 내가 생각했던 도시가 아니었다. 부산이 서울보다 고층 빌딩이 더 많고 바다보다 산 도시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산 많고 언덕이 너무 많아 부산 남자들은 허벅지로 말한단다. 유명한 영도다리는 막상 가보니 작은 다리였다. 사이즈는 광안대교에 밀리고 관광지로는 송도 용궁다리에 밀려서 역사의 뒤안길에 서있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송도에서도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는 왜 질리지 않는지 모르겠다. 정말 좋았다. 부산 국제시장과 자갈치 시장을 둘러보고 한정식 ‘큰집’에서 저녁식사가 준비되었는데 식사시간에 인원을 점검하니 한 명이 실종됐다. 가장 똑똑하고 똑 부러진 성품의 홀로 여행 온 노신사분이 안보였다.
사람이 실종되면 가이드가 땀난다. 일행 중 한 분이 계속 전화해도 안 받는다며 걱정했다. 결국 한 분은 마지막 목격했던 장소로 찾아 나갔다. 한정식집 식사는 진수성찬으로 나왔지만 미아가 된 노인 생각에 밥맛이 안 났다. 약 한 시간 소요되었는데 경찰차가 식당 앞으로 오더니 경찰관이 내리고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그 뒤로 똘똘이 노신사가 걸어 들어오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전화기를 안 잊어버리기 위해 관광버스에 놓고 내렸단다. 일행에서 이탈한 후 식당 이름은 기억 안 나고 한정식만 기억나서 파출소에 들어가서 도움을 요청했고 다행히 한정식 식당이 그지역에 단지 3군데라서 찾기는 어렵지 않았단다. 그는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무사히 식당에 도착했다. 한국경찰 정말 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되는 미국노인들과 돈 안되는 한국노인들
멕시코를 위시해서 중남미와 유럽국가들은 은퇴한 미국노인들을 모셔 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실제로 많은 미국인들이 물가가 저렴한 중남미, 스페인, 그리스 등으로 이주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물론 돈이다. 중산층으로 은퇴해서 연금 받으며 보험이 튼튼하고 착한 미국노인들은 범죄와도 무관하고 돈 쓸 일만 남았다.
반면 한국은 노인들을 돈은 안 쓰고 돈만 드는 계층으로 인식하고 대우하고 있다. 왜 그럴까? 실제 한국생활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노인들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미화원, 택시기사, 식당 종업원 등은 모두 5060 또는 6070세대들이다.
그런데 돈 소비하는 곳에는 대다수 젊은이들이 주류다. 벌기만 하고 안 쓰는 것인지, 아끼기만 하는 것인지 참으로 이상했다. 수많은 휴양지에서도 한국노인들은 보기 힘들었다. 선진국이라는 펄럭이는 깃발 아래 한국의 노인들은 소비에 있어서는 푸대접 받는 모습이었다. 반면 미국에서 온 우리들은 돈을 잘 써서 그런지 어디에서나 우대한 대접을 받았다. 제프의 한국기행은 계속된다.
문의 jahn20@yahoo.com
<
제프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