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프 안의 한국 기행 맛집 투어와 호캉스, 목적 없는 유랑체험
롯데 시그니엘 호텔 라운지에서 내려다본 롯데 월드. 명품과 판타지의 혼합체는 인공호수 위에 떠있고 거미줄 같은 지하상가들은 끊임없이 소비를 요구한다.
한국은 명품이 지배하는 세상임을 이번에 절실히 경험하고 왔다. 그리고 명품에 열광하다 보니 짝퉁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짝퉁 시장이 한국에 ‘잽’이 안 된다. 타이슨 코너에 명품 상점들이 있다 해도 짝퉁 시장이 명품점들 코앞에 있지는 않다.
한국은 소비문화가 바뀌었다. 악착같이 저금하고 알뜰살뜰 아끼는 모습들은 사라졌다. 이러한 철학을 대변하는 용어가 호캉스다. 우리는 한국 최고 호텔들을 여럿 답사해보았다. 비싼 호텔들은 모두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유명하고 고가일수록 더했다. 반면 나이든 사람들은 뒷골목 소줏집으로 밀려나 있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보다 단지 그렇게 살아왔고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 속에서 성장한 젊은이들은 남에게 보여주는 삶이 그들의 삶이 되어버렸다. 인스타그램 속의 모습이 본 모습인 양 스스로 걸어 놓은 최면술에 빠져서 허상과 본질을 구분 못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남현희와 전청조가 살았던 잠실 시그니엘에 묵다
전대미문의 사기사건의 주인공 전청조가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거주한 곳이 신기루 같은, 그리고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두 타워’를 오마주한 듯 보이는 잠실 롯데 시그니엘 타워였다.
환영을 쫓다 보면 주체하기 힘든 욕망에 자아 도취하기 싶다. 전청조가 그런 모습이다. 한국이 언제부터 승마나 펜싱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을까? 잠실은 롯데 왕국이라 해도 무방했고 그 정점에 시그니엘 호텔이 우뚝 서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긴 홀 웨이를 지나니 세 명의 직원들이 허리 숙여 정중한 인사를 하고 또 다른 문을 열어준다. 실용을 중시하는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는데 아마도 일본에서 건너온 문화 같이 보였다. 체크인 카운터는 79층에 있었다. 호텔 서비스를 상세히 설명들은 후 다른 엘리베이터를 사용해 89층 방으로 안내 받았다. 매번 최소한 2번 갈아타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건물에 소재한 호텔이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열흘을 시그니엘에 묵었고 소감을 말하자면 허세가 심한 실속 없는 호캉스였다. 우선 높이서 내려다본 서울 풍경은 기대치보다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그리고 종업원들의 서비스는 최소한의 의무만 다하는 모습이었다. 불필요하게 수많은 직원들이 서성거리며 허리 굽혀 인사하는데 막상 무엇을 물어보면 단 한번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근처 맛집 좀 추천해주세요?” “죄송합니다, 근처에 안 살아서 몰라요” 하는 식의 답변만 돌아왔다. 구글이 있는데 왜 물어보냐는 식이다.
-AI로 변해가는 젊은이들
젊은이들은 책임질 답변을 피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일반적으로 나이 먹은 사람들을 기피하는 듯 보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숙박업에 종사하는 젊은이들 치고는 의무만 다할 뿐 패기와 용기도 없어 보였다. 길 위에서, 지하철 안에서 그리고 호텔에서 마주친 수많은 젊은이들은 셀폰 바라보는 무표정의 AI들이었다. 감성과 대화가 사라진 그들을 우리 부부는 AI라 불렀다.
시그니엘 호텔 조식은 열흘 동안 아무런 메뉴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값비싼 호텔식당과 라운지는 젊은이들로 매일 붐볐다. 그 돈들이 어디서 났을까? 돈이 생기는 데로 써버린다는 욜로(yolo)족들… 전청조는 사기꾼인 동시에 욜로족이었다.
우리가 호텔에 투숙했던 시기가 기묘하게 그의 구속 시기와 같아서 뉴스 미디어 차량들이 호텔 주위를 매일 에워싸고 있었다. 우리가 목격한 롯데, 신세계, 현대 백화점들은 매일 인산인해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R.R. Tolkien가 환생하여 서울에 온다면 눈먼 듯 욕망을 쫓아 헤매는 젊은이들을 본다면 무어라 말할까? 소비를 강조하는 자유경제 체제, 삶의 시작부터 경쟁인 사회, 명문, 명품, 명인 들만이 인정받는 이 사회에서 강화도 촌구석에서 아무런 등판 없이 자란 한 여인은 그의 정체성마저 소멸하고 만다. 그리고 우리 손에는 어느새 작은 자갈이 들려 있다. 유령 마냥 서있는 욕망의 타워에 던질 걸인가, 아니면 오래전 유대인들이 그랬듯 한 여인에게 돌팔매만 할 것인가?
-이태원 참사와 할로윈, 나무들 비탈에 서다
짝퉁 시장 하면 이태원이었다. 용산에서 미군들이 떠난 이태원 거리는 늦가을 음산한 분위기였다. 옛날과 달리 거리가 말끔했다. 길거리 좌판 위에 온갖 짝퉁들을 팔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궁금증은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우리는 참사의 현장이었던 해밀턴 호텔 골목을 올라갔다. 할로윈을 앞둔 좁은 골목길 앞에는 데모하는 분들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었지만 분위기와 달리 골목길은 열려 있었다. 참사의 현장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평온했고 좁고 비탈진 언덕은 서울 어느 곳에서나 접할 수 있는 그런 비탈길이었다. 순간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가 떠올랐다. 위태롭고 불안하고 고독한 삶을 사는 젊은이들 중 사회의 부조리에 갈등하고 괴로워했던 그 시대의 수많은 젊음은 고국을 뒤로 하고 해외로 떠나갔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민족에게 주어졌던 가파른 비탈길 위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떠났던 70년대만 해도 확성기로 유토피아를 외쳤지만 정치 경제 환경 인권 부문에서 디스토피아에 더 가까웠었다. 데모하시는 한 분이 다가와 청원서에 사인을 부탁했다. “죄송합니다, 외국에서 와서…” 하며 사양하고 비탈길을 계속 올랐다.
“아니, 젊은것들이 놀다 죽은 것을 왜 자꾸 국가 탓을 해, 쯧쯧쯧.” 나이든 행인 한 분이 혀를 차며 ‘이태원 클라쓰’ 로케 방향으로 내려갔다. 아이러니 했다. 이태원은 넷플릭스 히트작에서 젊음의 꿈을 실천한 장소였다면 할로윈 참사는 젊음을 앗아간 인재의 현장이기도 했다.
“왜, 한국은 잊을 만하면 큰 참사가 벌어질까?” 나의 말에 국뽕이 강한 아내가 대답했다. “한국이 아니어도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사고야.” 나는 묵묵히 계속 언덕을 올랐다. 얼마를 올랐을까… 비싸 보이는 한남동 저택들을 끼고 도니 남산 아래 오랜 시간 등을 지고 서있는 하얏트 호텔이 나왔다.
-No Regret(후회 없다)
비탈길을 동행해준 와이프에게 말했다. “호텔에서 커피 하며 잠시 쉬어 갈까?” 그녀는 대답대신 미소를 보내왔다. 널찍하면서도 차분한 모습의 호텔 라운지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 이제 한국에서도 살 수 있을 것 같아.” 와이프는 라운지 유리 너머 유유히 흐르는 한강변을 내려다보며 빨간 와인 한잔 들이키며 말했다.
그녀는 81년 한국을 떠날 때 이 호텔에서 머물다가 떠났다고 했다. 40년의 세월, 얼마나 많은 강물들이 저 다리 밑을 지나 서해로 흘러 같을까? 멀리 남산 타워가 장승 마냥 서서 그 세월의 변천사를 무언으로 대변하는 듯했다. “너무 많이 변했지? 좋은 면으로 발전했으니 다행이지.”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 병 레벨이 눈에 들어왔다. ‘No Regret’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동안 고국에 자주 못 왔던 이유가 뒤도 안 돌아보고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지….” 내가 말하자 “그러니까 성공했지, 난 후회 없어.” 그녀가 간결하게 답했다. “cheers” 하며 와인 잔을 들어올렸다. 인생의 뒤안길, 이민의 굴레에서 쳇바퀴 돌듯이 살아왔던 삶들… 우리 모두 ‘No Regret’이길 기원 드리며 제프의 한국기행은 계속된다.
문의 jahn2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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